인도네시아(3)

▲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 알려져 있는 보로부두르(Borobudur)는 케두 평원의 언덕 위에 마치 산봉우리처럼 우뚝 솟아 있다.

9세기 언덕 위에 인공 산을 만들어
부처님의 나라를 재현한
세계 최대 불교사원 보로부두르

화산폭발과 이슬람왕조의 융성으로
신자를 잃고 밀림속 돌무더기로 전락
20세기 유럽인에 의해 옛모습 드러내

비슷한 시기 지어진 신라의 불국사는
속세와 불국토의 문턱 허물어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부처상 구현

인도네시아가 영국의 식민지배하에 있었던 19세기말. 자바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영국총독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고대 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즉시 네덜란드 발굴전문가를 단장으로 하는 탐사대를 조직해 케두 평원으로 파견한다. 탐사대가 거친 밀림을 헤치고 두터운 화산재를 파내자 거대한 유적이 그 실체를 드러내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 알려진 보로부두르(Borobudur)는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유적은 9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다. 불교를 신봉했던 마타람 왕국의 전성기였던 사일렌드라(sailendra) 왕조 때의 일이다. 이 왕조는 인도에서 중국에 이르는 해양실크로드의 거점을 장악하여 강대한 해상제국으로서 성장했고 인도의 불교를 아시아 여러 나라로 전파하는 거점이 되기도 했다. 거창한 불사를 일으키는 것은 신앙의 발전일 뿐만 아니라 국력의 상징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케두 평원의 불교문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 지역에 큰 화산폭발이 일어나면서 왕국의 수도는 동자바로 옮겨가고 사원은 기록으로만 남게 된다. 더구나 15세기 진출한 이슬람세력은 불교 왕조를 대체하면서 급속히 이슬람 개종을 주도했다. 신자가 없는 종교시설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집과 다를 바가 없는 법. 세계 최대를 자랑하던 이 유적 또한 밀림 속에 돌무더기로 숨겨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모습도 20세기 유럽인들의 발굴과 복원에 의해 재현된 모습이다.

이 사원은 죠그자카르타에서 서북쪽으로 40km 거리에 케두 평원의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멀리 계단으로 이어지는 정상부에 마치 산봉우리처럼 우뚝 솟은 실루엣을 향해 걸어간다. 다가가면 갈수록 그것이 산이 아니라 거대한 구조물임을 알게 된다. 언덕 위에서 드디어 그 구조물의 실체와 마주서자 경탄의 한숨이 쏟아진다. 돌로 쌓아 만든 거대한 산, 그것이 하나의 사원이라니! 이집트에 피라미드, 멕시코에 테오티우아칸이 있다면 아시아에서는 단연 보로부두르를 꼽을 것이다. 언덕(Budur) 위의 사원(Boro)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언덕 위에서 인공 산을 축조하여 부처님의 나라로 만든 것이다.

사원은 생일케이크와 같이 여러 단을 층층이 쌓아 만들었다. 마치 하나의 탑처럼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단형 피라미드의 형상이다. 최하단의 한 변 길이가 118m에 이르는 거대한 수투파로서 탑의 체감률처럼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기단을 층층이 쌓아서 만든 것이다. 작아진 기단 폭 만큼 복도를 만들어 기단 주변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설계했다. 물론 기단 면에는 불교 교리를 설명하는 부조들로 전시 벽처럼 장식되었다. 하지만 한 바퀴 400m가 넘는 길을 9바퀴 걸어 꼭대기까지 오르려면 코에서 단내 날 각오를 해야 한다.

전체가 10단으로 구성되었는데 맨 아래부터 6단은 사각형이며 그 위의 3단은 원형이다. 최정상부의 중심에는 반구형 돔으로 스투파를 배치했다. 사실은 70여개가 넘는 스투파 군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스투파라고 부르는 게 마땅할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최정상에 있는 대 스투파를 중심으로 작은 스투파들이 동심원적으로 배치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를 중심으로 수많은 부처들이 동심원처럼 둘러싸는 불교의 세계관을 형상화한 것이다.

수직적으로 보면 이것은 고대 인도인들이 세계를 모형화한 구산팔해(九山八海)의 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로부터 9개의 산을 올라 최정상에서 수미산을 만나게 된다. 9단으로 형상화된 기단들은 하부의 인간세계로부터 부처의 세계에 이르는 삼계를 상징하는 동시에 성불의 단계(Dacabumi)를 상징하는 10개의 단으로 형성된다. 즉, 하단은 인간의 욕망이 악의 힘에 의해 지배되는 욕계로서 지옥, 아귀, 축생의 3단으로 구성된다. 중단은 선한 의지로 악의 힘을 조절하는 형계로서 아수라, 인간, 천상의 3단이다. 상단은 해탈의 무형계를 의미하는데 역시 성문, 록각, 보살 단으로 이루어진다. 최정상에 반구형 돔은 당연히 해탈의 무형계로서 부처를 의미한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보로부두루가 지어질 즈음 경주에도 부처의 나라를 닮은 절이 세워진다. 불국사. 이름 그대로 부처님 나라의 상징이며 재현이다. 그러나 신라인들이 재현한 부처의 나라는 결코 인간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속세에서 고작 다리 하나 건너 대문간을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주눅들만큼 거대하지도, 위압적이지도,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아무리 사치스러워도 궁궐 수준을 넘지 않는다.

경주 남산은 서민들이 생각한 부처의 세계이다. 산골짜기 마다 부처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남산의 부처들은 인간이 오를 수 없는 신령한 산 속이 아니라 도시의 뒷산에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곳의 부처님들은 결코 근엄하거나 폼을 재지도 않는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고, 양 볼이 오동통한 애기 부처의 순진한 미소도 있다, 굳이 부처의 세계가 인간의 세계와 다를 바가 있으랴, 부처는 이 먼 동쪽에 와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게 되었다. 커피 내음보다 진한 낙엽 밟으며 남산의 오솔길을 걷다보면 우연히 부처와 만날지도 모른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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