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빗 빗고 나서
참빗 빚으니
엉긴 머리 길 트이고
이 사냥하고….

어쩌면 천만척
큰 빗을 얻어
만백성 머리 빗겨
이 없이 할꼬?

▲ 엄계옥 시인

정의로운 사람만 당한다는 말이 있다. ‘정의롭고 착하게 살라고 배웠는데 정의 따위 찾았다가 목덜미 물어뜯기는 시대’(로맨스 푸어, 이혜린)에 직면해서일까. 이 시는 사백 년 전 권력에 기생하며 약한 자에겐 군림하고, 강한 자에겐 아첨하며 사는 모리배를 빗댄 풍자시다. 얼레빗 참빗으로 쓸어버린다니 머리 밑이 시원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엉킨 시류를 틈타서 백성의 피와 땀으로 낸 세금을 빨아먹는 자를 천만척이나 되는 큰 빗으로 소탕하고자 한다니, 과연 지금 우리 모습은 그때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라가 썩지 않으려면 정치가 정치적이지 않아야 하고 이가 기생할 자리부터 없애야 한다. 천만 자나 되는 큰 빗으로 만백성을 구원해 줄 지도자를 기다리며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희망 앞에 섰다.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란 마음이 또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보살피는 일이다. 고귀한 영혼은 부귀영화나 권세에 팔지 않는다는데, 가끔씩 먹고 사는 일로 권력 앞에 살살 거릴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진종일 머리 밑이 스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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