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흉노왕자 휴저가 사마천에게 말했다.

“제천금인을 아시다니! 어떻게 날 아오?”

“흉노족 왕자가 들어오는데 금인처럼 빛나서 하는 말이오.”

한나라 수도 장안의 뇌옥은 깊고 어두웠다. 긴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육중한 나무문 창틀 방은 마치 무덤 속 현실 같았다. 옥중을 밝힌 고콜불은 어둠을 몰아내는 데 힘이 겨운 듯 까무룩거리고 있었다.

사마천의 뇌옥방에 들어온 흉노족 왕자는 키가 크고 눈은 맑으며 얼굴은 빛이 나는 듯하였다.

“나를 제천금인이라 함은 내 얼굴이 때문이 아니라 우리 흉노족의 풍속을 알고서 하는 말 아니오?”

“맞소. 금인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지내는 흉노족의 풍습을 잘 알지요. 난 역사를 기록하는 태사령 사마천이오.”

휴저가 가만히 살펴보니 사마천은 어둠 속에서 붓으로 죽간에 글을 쓰면서 말하고 있었다. 제천금인은 농서에 있는 흉노족이 서역불교를 받아들여 도금을 한 불상에 절하는 불교의식임을 사마천은 알고 있었다.

“아, 당신이 사마천! 살아 있는 거요? 우리 흉노족에게 항복한 한나라 이릉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의 노여움을 받아 사형을 당한 줄 알고 있었소.”

“그렇소. 나는 당신네 흉노족 때문에 곧 죽을 운명이오, 허허.”

사마천은 흉노왕자 휴저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릉은 보병 5천으로 흉노족과 싸워 분전하다가 흉노족 8만에게 포위당해 항복한 장군이었다. 조정에서 모두들 패장 이릉을 비난했고 한무제는 이릉의 어머니와 처자까지 죽이려 했지만 사마천만은 부득이하게 항복한 이릉을 변호했다.

이릉을 변호하는 사마천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한무제는 사마천을 옥에 가두고 사형판결을 내린 것이다.

신하가 의견 한 마디를 내었다고 사형을 내리는 황제도 우습지만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사마천은 이릉과는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마천, 나는 여기 들어오기 전 들었소. 사형을 당하든지 말구종이 될 것인지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왕자와 나나 운명의 낙차가 크군요. 나는 이렇게 죽간에 글이나 쓰다 망나니가 부르면 갈 것이오.”

“난 어제까지 왕자의 신분이었지만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 옷에 말똥을 묻히는 마부노릇이라도 기꺼이 할 것이오. 사마천, 그대는 정말 미련 없이 망나니를 따라 갈 수 있소?”

 

우리말 어원연구

우리. 【S】uri(우리), 【E】house, cave, community. 우리는 울타리 안의 집을 말한다. 울타리의 울과 우리는 같은 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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