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값에 귀한줄 모르고 쓰는 물자원
암각화 보전과 맞물린 식수대책 위해
절수하는 생활습관부터 길렀으면

▲ 최연충 울산도시공사 사장

이 세상의 재화는 경제재와 자유재로 나뉜다. 경제학 원론에 의하면 그렇다. 경제재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반면 자유재는 누구나 공짜로 쓸 수 있는 재화를 이른다. 그런데 엄연히 경제재이지만 마치 자유재인양 취급되는 특별한 재화가 있다. 바로 물이다. ‘돈을 물쓰듯 한다’는 말도 물을 자유재로 보는 관념에서 비롯되었을 터이다. 물론 그릇된 생각이다. 물이야 말로 삶의 질을 보장하는 기본요소이자 도시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자원이다.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물 사정이 좋은 나라가 아니다.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는 1인당 연간 사용가능한 수자원량을 기준으로 1700t 미만인 나라를 물 스트레스 국가로, 1000t 미만인 나라는 물 기근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488t에 불과해, 물 스트레스 국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실제 물 사용량은 어떨까. 2015년 기준으로 서울의 1인당 1일 급수량은 301ℓ로, 동경의 220ℓ, 런던의 155ℓ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아껴써야 할 우리가 오히려 사정이 넉넉한 나라보다 더 헤프게 물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국민 의식이나 생활습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부분도 크겠지만 우리나라의 물값이 너무 싸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OECD 통계에 의하면 원화로 환산한 수도요금이 우리나라는 t당 683원으로, 일본(1309원), 미국(1837원), 독일(3146원), 덴마크(3972원) 등에 비해 턱없이 낮다.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5~6배 더 비싼 물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이렇게 물을 마구 써도 되는 것인지 냉철하게 돌아보고 반성할 일이다.

우리 지역 현안인 반구대 암각화 보존문제도 관건은 결국 물이다.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사연댐 수위를 대폭 낮추면서도 울산 시민의 식수 조달에 지장이 없다면 고민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근 운문댐이나 밀양댐에서 물을 나누어 받을 수만 있다면 좋겠으나 이 역시 쉽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국무총리실에서 다시 중재에 나서 해결방안을 찾겠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보면서, 덧붙여 한가지 제언을 드린다. 암각화를 살리는데 힘을 보태는 뜻에서 범시민적인 절수운동을 펼쳐보자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 울산은 식수 공급을 전적으로 낙동강물에 의존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물값을 치르고 있는 처지이니 말이다. 수도꼭지를 계속 열어놓은채 세수하고 양치하는 생활습관부터 바꾸고, 가정용품이나 설비도 가급적 절수형으로 대체하자. 가정에서 쓰는 변기를 절수형으로 바꾸기만 해도 1인당 하루 40ℓ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무심코 흘려보내는 빗물도 잘 활용하여 쓰임새를 높여보자. 집집마다 빗물 홈통에 파이프를 연결하여 빗물을 받아 허드렛물로 쓰는건 어떨까. 공원, 주차장 등 공공시설 지하에 빗물저류조를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에 담아두었던 빗물로 도로를 청소하고 공원의 수목과 가로수에 물을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수돗물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방울의 물이라도 아껴쓰는 간절한 노력을 보여주면서 암각화 보존에 따르는 식수대책을 요구한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절수도시’는 에코시티와 함께 새로운 도시브랜드로도 삼을만 하다. 마침 내년부터 율동 공공주택지구내에서 440가구 규모의 국민임대주택 건설이 시작된다. 이 단지에는 절수형 변기, 투수성 포장, 빗물저류조, 빗물을 활용한 옥상녹화 등 다양한 친환경 설계공법이 적용된다. 울산이 절수도시로 거듭나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최연충 울산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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