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사마천은 휴저왕자에게 말했다.

“망나니의 칼에 죽느니 차라리 목을 달아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번번이 하오.”

“정녕 죽음을 피할 길은 없는 것이오?”

“두 가지가 있긴 하오.”

사마천은 한나라의 형법을 연구하며 사형수가 목숨을 부지할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사형수가 죽음을 면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50만 전이라는 돈을 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궁형을 자청하는 것이다. 사마천에게는 50만 전이 거금이었지만 부자에게는 그리 큰돈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마천을 변호하면 자기도 역적이 되는 상황에서 돈까지 지불하며 그를 구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면 궁형을 택하면 되겠구려.”

“무슨 소리요? 태사령으로서 고금의 역사를 살펴보건대 죽음보다 못한 것이 궁형이오.”

사형 선고를 받으면 백이면 백 모두 궁형보다 사형을 택했다. 사형을 받으면 죽음과 함께 죄는 사라지지만 궁형을 받으면 죄와 함께 대대로 후손들에게까지 치욕거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사마천, 정말 그대는 생명보다 명분이 소중하다고 믿소? 나라면 부끄럽게나마 살아남아 바른 역사를 써서 불명예를 씻겠소.”

휴저왕자는 사마천의 아픈 곳을 찔렀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유언인 역사였다. 아버지 사마담은 죽기 전 태사공으로서 중국 역사를 완성하지 못했음을 한탄하면서 아들 사마천에게 완성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던 것이다.

“사마천, 여기서 나와 함께 살아서 나갑시다. 난 흉노족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한나라의 마구간을 지키는 말구종의 지위라도 달게 받을 것이오. 말을 타고 나의 고향 흉노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옛 영광을 구현할 뜻이 있기 때문이오. 그대도 나와 함께 살아남아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는 게 어떻겠소?”

사마천의 눈은 기름을 바른 듯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다.

믿음을 보여도 의심하며 충성을 다해도 비방하는 억울한 심경을 알리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강태공이나 오자서, 여불위와 형가의 삶이 떠올랐다. 나도 그들처럼 부당한 억압을 딛고 통쾌하게 복수하고 대세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인가.

‘휴저 말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백이숙제나 이소처럼 대의를 위해 미련 없이 목숨을 던질 것인가.’

마침내 사형집행일이 되어 형리가 칼을 멘 망나니를 앞세워 뇌옥으로 왔다.

“사마천, 나오시오.”

 

우리말 어원연구

기름:[S] girum, grim(기럼, 그림), cham oil.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