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정신질환
정상과 질환의 경계마저 명확치 않아
단순히 기준에 꿰맞춰 진단하기보다
세심한 주의와 인내로 환자 지켜봐야
세상사도 모호한 상황이 대부분
섣부른 재단으로 비난하기보다는
세심한 사실확인과 현명한 판단으로
억울하게 여론뭇매 맞는 사람 없게해야

‘진단은 중요하지 않다.’

정신과 수련을 시작할 때부터 반복해 듣던 말이다. 진단이 중요하지 않다니? 정확한 진단을 해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정신질환의 원인은 물리 법칙처럼 단순하지 않다. 암이나 감염처럼 검사로 확인할 수도 없다. 게다가 정상과 질환의 경계가 명확치 않고 그 기준조차도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면 어떤가.

필요 때문에 진단기준이 정해졌더라도 의사는 진단의 한계와 이후의 영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진단분류는 미국에서 2013년에 출간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 5판>이다. 이 책은 서문에서 반드시 경험 있는 전문가에 의해서 사용되어야 하고, 특히 법적인 용도로 함부로 사용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정신과 진단의 고민을 몇 가지 살펴본다.

인지기능이 평균에서 멀어지면 지적장애로 진단한다. 오래 전부터 하위 2.5%, 즉 지능지수가 70 이하인 사람으로 정하였다. 이 기준에 맞아야 장애인 등록도 하고 병역도 면제받을 수 있는데, 검사 방법과 컨디션에 따라서 점수는 크게 달라진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5년 전 지적 장애인 사형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하였다. 지능지수 1점 차이로 생사가 갈릴 수 있다.

소수에게만 나타나는 동성애는 처음에 성적 일탈로 분류되었으나 미국 정신과학회에서 의학적 검토와 논란 끝에 1973년에 정신질환에서 제외되었다.

군인들이 전투 후에 극심한 불안을 경험하는 사례는 남북전쟁과 세계대전에서 이미 알려졌지만, 베트남 참전 미군의 증상을 연구한 뒤에야 1980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공식 진단명으로 등재되었다. 일단 질환으로 인정을 받자 지진 등 재난이나 교통사고 때마다 이 진단을 받는 사람이 급속히 늘었다. 특히 예상치 못했던 것은 사고의 충격과 증상의 정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고 이후에 오히려 성숙해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회복 능력이 다르니 법적 보상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월경전 불쾌장애는 20여 년간 질환 후보에 올라 연구되다가 2013년에 정식 진단이 되었다. 생리 주기마다 기분변화를 겪는 여성들에게 진단이 남용될까 일부 우려하였으나 실제 심한 고통을 받는 환자들을 찾아내어 치료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였다.

최근 진단분류 개편에서 가장 큰 이슈는 사별 후 겪는 고통도 우울증으로 봐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가족의 사별 후에는 흔히 슬픔, 우울, 식욕 저하, 무기력, 악몽 심지어 환각 등의 애도 과정을 겪는다. 증상만 보면 우울증에 가깝다. 예전에는 증상이 두 달을 넘기 전에는 우울증 진단을 내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가능해졌다. 애도반응에서 우울증으로 진행하는 사람이 많다는 연구 결과를 인정받았다. 이제는 자연스런 애도 과정을 섣불리 우울증으로 진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신중한 의사는 증상이 모호한 환자를 단순히 기준에 꿰어 맞춰서 명쾌한 진단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단의 어려움과 한계를 솔직히 설명하고 경과를 관찰한다. 증상보다 맥락을 살피느라 세심한 주의와 인내가 필요하다. 진료 경험이 쌓일수록 확신이 줄고 겸허해진다.

시야를 진료실 밖으로 돌려보자. 진단 방식과 삶의 판단은 그리 다르지 않다. 세상일이 단순해보이지만 실은 모호한 상황이 대부분인데도 성급히 재단하고 비난하는 일이 갈수록 늘어난다. 세심한 주의와 현명한 판단이 설 자리가 없다.

올해 인터넷을 달구었던 240번 버스기사 사건과 수년전 채선당 임산부 폭행사건, 푸드코트 국물 화상사건 등은 그 일면을 보여준다. 사실 확인도 없이 인터넷 여론은 분노로 들끓었다. 이 사건들은 공통점이 있다. 가해자로 몰려서 엄청난 도덕적 비난을 받았던 이들은 모두 CCTV 증거가 나온 뒤에야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확고한 증거가 없었다면 이들은 평생 억울함을 안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되짚어보면 이런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으리라.

인터넷 여론은 학교 현장에도 큰 압력으로 작용한다. 물론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과 같은 잔인한 폭력은 엄벌을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사소한 교내 갈등에도 학교폭력의 잣대를 쉽게 들이댄다는 것이다. 최근에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 자녀의 다툼을 학교에 알렸다가 학교와 경찰로부터 학교폭력위원회를 열기 원하느냐는 질문만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한다. 학교폭력을 다루는 까다로운 절차와 처벌 규정, 그리고 여론의 압력 때문에 교사들은 자상한 중재와 훈육을 포기하곤 한다. 연필을 깎는데 손에 잡히는 것은 도끼자루밖에 없는 셈이다.

인터넷은 정보를 직접 소통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분노와 두려움의 전염에 취약하여 과격한 여론을 형성한다. 여론 태풍은 개인을 무력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치인을 흔들어서 비현실적인 법과 제도를 만든다. 짧은 시간이지만 진료실에서 환자의 진단을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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