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하지왕과 우사는 금관가야의 객잔에 숙소를 정하고 금관가야 일대를 돌아다녔다. 둘은 소금과 그릇과 철을 마바리로 싣고 다녔다. 소금은 질 좋은 우시산국 산이고, 그릇은 가야요에서 구운 긴목항아리, 굽다리접시, 찬합, 고배 등이고, 철은 마구와 관련된 말종방울, 발걸이, 철고리, 띠고리와 철제농기구인 낫, 도끼, 괭이, 쇠가래날을 싣고 다녔다.

둘은 이 것을 팔거나 물물교환하며 여행을 다녔다. 허름한 핫옷에 주머니를 차고 벙거지를 쓴 둘을 장돌뱅이 부자라고 해도 의심할 사람이 없었다.

여가전쟁의 패전으로 김수로왕 이래 가야제국의 맹주였던 금관성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안라가야의 장수와 수병들의 지휘 하에 성의 일부가 복구되고 있었다. 이시품왕은 광개토태왕의 포로가 된 뒤 철정 만 전을 바치고 귀국하였으나 안라가야의 지배 하에 들어가 옛 권위를 잃고 간신히 왕좌만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왕은 밤이면 등잔을 켜 스승 우사가 준 흉노왕자 김일제전을 읽고 있었다. 이 지상 모든 김씨의 시조이며, 김일제 이전에는 김씨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특히 한반도 남부 가야왕조와 신라왕조를 열었던 김수로와 김알지, 그리고 김씨 왕족과 일가의 선조이기에 더욱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하지왕 자신의 조상이었기 때문이다.

“스승님.”

“예, 마마.”

“마마라고 하지 말래도 계속 그리 하시오? 그러면 우리가 변복을 하고 장사꾼으로 변신한 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부자관계로 해요. 나는 아명인 꺽감으로 갈 테니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아버지가 되세요.”

“역시 영명하십니다.”

“아버지, 영명하다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알겠다, 아들아. 그래, 그 책은 지금 어디쯤 읽고 있는가?”

“흉노왕자와 사마천이 옥중에서 만난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두 분이 운명의 큰 낙차를 어떻게 이겨내는지 잘 읽어 보거라.”

“예.”

사마천과 휴저왕자는 동시에 뇌옥에서 나왔다. 사마천은 사형 대신 궁형을 택해 남근과 음낭이 잘린 채 뇌옥에서 나왔고, 휴저는 흉노 왕자의 신분에서 말을 돌보는 말구종으로 족강되어 뇌옥에서 나왔다.

휴저 왕자가 손등으로 햇빛을 가리며 사마천에게 말했다.

“하늘이 눈부시군요. 이제부터 우리의 운명을 시험해 봅시다.”

“좋소, 한 가지 뜻을 이루고자 결심하면 남의 조소가 부끄럽기는커녕 힘이 되겠지요.”

 

우리말 어원연구
주머니. 【S】jumuni(주무니), 【E】pocket. ‘muni‘는 담다(retain)라는 뜻으로 ‘아주머니’ ‘어머니’ ‘할머니’ ‘주머니’의 어원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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