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련 아동문학가

문향(文香)은 시공(時空)을 초월한다. 문학기행을 할 때마다 갖는 생각이다. 오영수문학관 주관의 문학관 탐방은 이런 느낌이 더 강했다. 울산의 향토작가인 오영수의 발자취를 따라 간 탐방인 까닭이다. ‘작가 오영수의 문학혼을 찾아서’란 테마 여행의 무대는 일본이었다. 오영수를 비롯해서 윤동주, 정지용을 만났고, 일본문학을 알 수 있는 문학관이 세 군데, 박물관이 두 군데, 사이사이 순백의 백조를 연상케 하는 히메지성을 비롯해 교토와 나라, 오사카, 우지를 아우르는 유적이나 관광지를 돌아본 3박4일. 세계 각국의 의식주는 물론 음악, 미술까지 아우르는 인류학의 보고 오사카 국립 민족학 박물관까지 문학과 예술을 향유할 기회였다. 오영수문학관에서 빡빡하게 짠 일정은 한 코의 오류도 없이 촘촘하게 짠 직물처럼 아귀가 맞았다. 패키지여행으로는 결코 아우를 수 없는 짧고 알찬 일정이었다.

가슴을 채운 탐방지는 역시 문학관이다. 노벨문학상으로 이름을 드날린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문학관이 대표적이다. 그의 문학관은 오사카의 중심부인 이바라키에 자리하고 있다.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이바라키는 세 살 때부터 열여덟 살 때까지 작가가 살았던 곳이다. 많은 작품들이 성장기와 무관하지 않으니 그의 문학관이 이곳에 자리한 것은 자연스럽다. 그가 근대 일본문학사상 부동의 지위를 구축했음은 ‘설국’으로 받은 노벨문학상이 증명한다. 다만 문학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음에도 끝내 자살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안타까웠다.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 3년 만이다. 일흔세 살. 굳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귀천할 만한 나이다. 스스로 기억하기도 어려운 세 살 때부터 부모와 사별했고, 자신을 데려다가 돌봐주던 조부모도 그가 10대때 세상을 떠났다. 가스를 마시고 자살하기 직전에는 아끼던 제자마저 자결했으니 어쩌면 사랑하는 이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설국’은 어쩌면 그가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피안의 나라는 아니었을까. 지극히 서정적으로 묘사된 풍경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인간적으로는 불행했던 스스로의 삶을 순백의 세상에 내려놓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에 다소 쓸쓸해진 마음으로 문학관 탐방을 마무리했다. 일본 문학의 대가를 만난 것은 벅찬 감동이었지만 더 부러운 것은 히메지와 고베문학관이다. 히메지문학관은 안도타다오의 건축물로도 명성이 높다. 문학관을 세계적인 건축가의 손에 맡긴 히메지 시의 문화적 안목이 경이롭다. 웅장한 현대식 건물인 히메지문학관에 비하면 고베문학관은 아주 조촐하다. 오래된 성당건물을 그대로 사용한 것부터 대조적이다. 외관에서 풍기는 고즈넉함은 문학관 내부에도 곳곳에 스며있다. 감실로 썼음직한 보관함은 물론, 포도넝쿨이 그려진 창문도 그대로다. 오르간 연주만 있으면 그대로 미사분위기로 바뀔 것 같아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진다.

이들 두 문학관은 개인의 문학세계가 전시된 곳이 아니다. 지역 출신 문인들의 작품이나 그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문학관이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후세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단 한 작품이라도 후세 독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문학관이 있다는 사실이 지역작가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여간 부럽지 않았다. 겐지모노카타리박물관에서 20분짜리 영상으로 본 ‘겐지이야기’. 마치 변사가 풀어내는 우리나라의 가극을 보는 느낌이랄까.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다소 과장된 듯한 대사의 리듬이 기억에 남아 웃음 짓게 한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의 문인과 그들의 작품을 만난 것은 특별한 감회였다. 오사카대학 도서관에서 오영수선생의 단편소설을 보았다. 우리 일행을 위해 대출도 미뤄둔 선생의 작품집은 ‘머루’ 부분을 펼쳐둔 채였다. 책꽂이에 꽂힌 한국어 서적들도 고향의 오랜 지기를 만난 듯 반가웠다. 도시샤 대학에서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를 만났고, 우지시(宇治市) 신핫코바시(新白虹橋) 한 귀퉁이에 세워진 ‘시인 윤동주의 기억과 화해의 비’를 보는 행운도 얻었다. 지난 10월 28일 제막식을 한 후 첫 번째 한국인 방문객이었을 거라는 자부심으로 읽은 ‘새로운 길’. 자잘한 도토리들이 자갈처럼 깔려 시를 돋보이게 한다. 우지시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만큼 한일관계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라본다.

장세련 아동문학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