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보험심사기준 수시 변화
진료보다 더 힘든 것이 보험청구
기준 벗어나면 의사가 물어내야

▲ 배상문 위앤장탑내과 원장 내과전문의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0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하는 문재인케어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왜곡된 채 간신히 지탱되고 있는 의료체계가 아예 붕괴될 수 있다”며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이전에 급여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의사들의 행동을 납득하기 힘들어 하는 국민들도 많은 것 같다. 의료의 보장성 강화는 모두의 숙원이다. 의사들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속사정을 알아보면 이해될 부분도 많을 것이다.

12월16일 부산에서 열린 대한골대사학회 주최의 연수강좌에 다녀왔다. 국내 최고의 골다공증 치료 전문가들이 강의를 했다. 강의 말미는 치료제의 보험기준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리나라는 교과서보다 중요한 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심사기준이 있다. 일명 ‘심평의학’이라고 한다. 골다공증치료를 전공하는 교수들도 보험기준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한다. 어떻게 하면 치료를 잘할 것인가 보다 삭감을 당하지 않을지가 더 관심사였다. 결론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약에는 급여(보험이 되는 약)가 있고 비급여(보험이 되지 않는 약)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갑상선호르몬제 같은 고가의 약들은 비급여였다. 최근 급여로 바뀌면서 허가사항이나 보험기준이 까다로워졌다. 보험기준을 벗어나면 삭감이 된다. 삭감이 되면 의사나 병원이 대신 돈을 물어내야한다.

심평원은 고가의 약을 급여로 바꾸면서 보험기준을 매우 까다롭게 만들었다. 개원의사인 필자도 매달 심평원에서 삭감통지서가 온다. 봉투를 뜯을 때마다 짜증이 난다. 왜 내가 먹지도 않은 약을 대신 돈을 내야하는지? 보험기준에 맞지 않게 처방했다는 이유다. 한 가지 질환만 전공하는 교수들도 삭감을 피하기 힘든데 다양한 질환을 봐야하는 개원의들이 모든 약의 보험기준을 숙지하기도 쉽지 않다. 보험기준 또한 매번 바뀌고 일관성도 없다. 대학병원에서 먹던 약을 대신 처방해 달라고 오는 환자에게 같이 처방했다가는 엄청나게 삭감돼 올 수도 있다. CT나 MRI같은 검사도 처음에는 비급여였다. 급여로 바뀌면서 보험기준이 까다롭다. 방사선과 전문의들의 말에 따르면 검사 판독보다 더 힘든 것이 보험청구라고 한다. 검사의 필요성에 대한 사유를 적어야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고가의 검사까지 받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 비용 모두 건강보험이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절감을 위해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만들고 의사들에게 삭감을 시킨다. 국민 1인당 연간 의료비의 경우 OECD 평균이 3233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1879달러에 불과하다. 2009년 기준으로 GDP(국민총생산) 중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OECD는 9.6%인데 우리는 6.9%다. 미국은 17.4%가 의료비다. 국민의 1인당 외래진료횟수는 연간 13회로 일본과 함께 세계 1위이다. 우리나라 의사의 1인당 연간 외래진료횟수는 OECD평균보다 2.8배 많은 6694회에 달한다. 반면 의료에 소요되는 재원 중 공공에 의해 조달되는 비율은 OECD가 72%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58%에 불과하다.

젊은 의사들이 생명을 구하는 분야를 외면하고 성형외과, 피부과 등에 몰린다. 외과나 산부인과 전문의들도 칼을 버리고 피부미용이나 비만관리로 간판을 바꿔단다. 내과전공의 지원도 미달된 지 오래다. 의료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건강보험료를 대폭 인상할 수밖에 없는데 국민들은 거부한다. 원가 이하로 책정돼 있는 의료수가도 정상화해야한다는 것을 알지만 고령화와 더불어 의료비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규제를 할 수밖에 없다.

미국 같은 나라도 우리와 같은 전국민의료보험이 없다. 클린턴, 오바마 정부가 그토록 노력을 했건만 실패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다. 가장 어렵고 위험하고 필요한 일을 하는 의사들은 푸대접을 받는다. 적당한 수준의 과잉 진료나 효과를 확신할 수 없는 비급여 진료가 없이는 의사로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의학 지식은 끊임없이 발전하는데 의사들은 자신의 전공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미용이나 비만관리에 전념한다. 마케팅 기법이나 방송 출연에 몰두하는 의사들도 있다. 의료정책은 정치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정치인들은 선거때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외치지만 보험료 인상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보장성 확대는 모두가 바라는 바다. 문제는 재원확보를 할 방법이 있느냐는 것이다. 심평원의 칼날이 두렵다.

배상문 위앤장탑내과 원장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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