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우사는 대가야의 시조 뇌질주일과 뇌질청예라고도 불리는 김수로왕은 형제간이며, 뇌질주일이 뇌질청예의 형이어서 대가야는 금관가야의 형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왕이 말고삐를 잡으며 우사에게 말했다.

“대가야가 금관가야의 형님 나라라는 사실이 좋긴 합니다.”

“사실 그것은 대가야가 팽창하던 금림왕, 회령왕 시기에 만들어진 향토 신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로만 존재하지 실제 역사적 증거가 부족합니다.”

금석문을 신뢰하고 실증사학을 고집하는 우사의 말은 날카롭고 냉정했다.

하지왕이 우사에게 말했다.

“가야와 신라의 왕족이 모두 흉노족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글로만 기록되어 전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 역시 믿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자의적일 수 있는 사관의 사초만으로는 우리가 흉노족의 후예라는 사실의 증거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지요. 처음엔 저도 의심을 했으니까요. 그럼, 제가 결정적 증거를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사는 말을 끌고 금관성 대정전으로 들어갔다. 하지왕도 말에 내려 뒤따라 들어갔다. 아라가야 수병들의 감독 하에 금관성이 서서히 복구되고 있지만 여전히 폐허상태였다. 왕실의 쌍어문 문양은 깨어지고, 건물의 절반은 불이 타 검게 변해 있었다.

광개토태왕은 군사를 이끌고 이곳 금관성을 짓밟고 마지막으로 종발성을 향했다. 종발성으로 도피한 이시품왕은 목라근자와 함께 마지막까지 광개토태왕에게 저항했으나 성은 함락되고 둘은 포로가 되어 평양까지 끌려갔다. 이시품왕은 광개토태왕에게 철정 4만근을 바치고 굴욕적인 신속의 노객이 되어 귀국해 지금은 고구려와 신라, 아라가야의 간섭 하에 간신히 왕위만 유지하고 있었다.

둘은 품계석을 지나 대정전 앞으로 갔다.

우사가 대정전 옆에 놓인 청동 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리로 가시지요.”

둘은 세 발로 선 청동 솥 앞에 섰다.

“이 솥이 흉노인들이 제천금인의 의식 때 사용하던 솥입니다. 흉노족 김씨들이 중국 서원궁에서 이곳 가야로 올 때 가져다 놓은 것이지요. 여기에 새겨진 명문을 한 번 볼까요.”

청동 솥에는 한자로 쓰여진 명문이 있었다.

‘西苑宮鼎 容一斗 幷重十七斤七兩七’

“‘서원궁의 솥, 용량은 한말이며 무게는 17근7이다’라는 뜻입니다. 왕망 당시 중국 서원궁에 살던 김씨들이 사용하던 솥입니다.”

하지왕은 손으로 청동솥을 어루만져 보았다. 차갑고 매끄러운 기운이 손바닥에서 등줄기를 지나 온몸으로 퍼져갔다.

 

우리말 어원연구
솥. 【S】soc(속), suc(숙). 【E】an iron pot. 숯, 숯불, 숫(숯)처녀의 ‘숯’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며 ‘솥’은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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