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대응 책임 논란에 위축…“지인도 희생, 무력감 느껴”
“생사 기로서 불길 뛰어드는데…열악한 소방시스템 정비해야”

▲ 21일 오후 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이 사고현장 수색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는 화재 발생 닷새째를 맞았지만, 현장에는 매캐한 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케한다.

유리창 곳곳이 깨지고 검게 그을린 외벽, 10여 대의 차량이 불에 탄 1층 등 곳곳은 마치 폐허를 연상케 한다.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통곡의 현장이지만, 화마와 사투를 벌였던 소방관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통한의 현장이다.

제천소방서 소방관들은 지난 21일 오후 화재가 발생한 뒤 며칠동안 제대로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현장을 지켰다. 휴식도 소방차, 구조차 등에서 잠시 다리를 펴고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이다.

지금도 15명이 화재 현장에서 상황실 운영, 화재 감식 지원, 현장 통제 등의 업무를 보고 있지만 대부분 감정·심리 상태를 읽기 힘들 정도로 표정이 없다.

취재 기자가 사고 현장을 오가는 소방관에게 화재 당시의 상황을 묻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긴 한숨만 내쉬었다.

그러면서 “이번 화재로 평소 친하게 알고 지내던 지인도 한 명 숨졌는데… 지금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나직하게 내뱉었다.

또 다른 소방관 역시 “제천소방서 전체가 ’멘붕‘ 상태”라며 이번 화재에 대해 말하기를 극도로 아꼈다.

충북도 소방본부의 한 관계자는 “소방서 직원 상당수가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좁은 동네인 제천 출신이어서 사망자 가운데 1∼2명은 평소 알던 사람일 것”이라며 “구조를 기다렸던 사람을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침통해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시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

소방당국은 지난 21일 오후 4시 사고 발생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으나 40여 분 동안 많은 사람이 화염에 갇혀있는 2층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2층 사우나에서는 2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고층으로 피했던 주민들도 민간 스카이 차 업체가 3명을 구한 반면 소방서는 1명을 구조하는 데 그쳤다.

더욱이 최근 화재 4시간이 지난 뒤인 21일 오후 8시 1분까지 희생자와 통화를 했다는 유족 등의 주장이 나오면서 초동 대응 부실이라는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경찰이 전화 통화내역 조사 등을 통해 희생자들의 마지막 생존시간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결과에 따라서는 소방당국 책임론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한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 출동하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두려움 속에서 일한다. 이런 큰 사건을 겪고 나면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화재 진압 과정에 대한 책임은 엄중히 따져야 하지만, 소방차나 굴절사다리차 등을 소방관 1명이 운전하고 출동할 정도로 열악한 소방시스템도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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