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둘은 대정전의 청동 솥 앞에서 북방의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청동 빛처럼 시리디시릴 대로 푸르고 청동 솥처럼 깊고 웅숭했다. 어디선가 멀리서 유목민의 말발굽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 듯했다. 머나먼 청동의 시간과 푸르른 기억들이 무덤 속의 부장품처럼 따라 나오는 듯했다.

우사는 청동 솥뿐만 아니라 왕들이 차는 쓰는 황금대구와 환도대도, 장군과 병사들이 입는 철갑옷과 투구, 심지어 말 뒤에 싣고 다니는 동복까지 모두 흉노족의 유물이라고 했다.

우사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지금 가야철로 만든 모든 것은 철기 민족 흉노족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선조 김씨들이 흉노의 땅에서 철기를 가져와 청동기를 사용하던 선주민을 정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옮기는 것입니다.”

출생의 문화, 죽음의 묘제, 혼인의 풍습, 제사의식, 음식, 의복, 주거 모든 것이 배와 수레에 실려 함께 온 것이다.

하지왕이 우사에게 물었다.

“태사, 그렇다면 원래 있던 이곳 선주민인 변진인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단군 왕검께서 신시에 도읍한 이래로 이어져 내려온 웅녀의 후손, 조선의 역사가 부인되는 것 아닙니까.”

“선주민의 역사는 날줄과 씨줄로 짠 베입니다. 바탕이지요. 바탕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위에 아름다운 무늬를 놓는 것이 새로운 정복민의 문화입니다. 마마, 저쪽으로 가보시죠.”

우사는 하지왕을 애꾸지로 안내했다. 애꾸지는 작은 언덕이어서 말을 타고 오를 만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많은 무덤들이 있었고 비록 작은 언덕이지만 사방이 트여 가까이는 대성의 금관성과 멀리는 양동 마을이 한꺼번에 보이는 조망 좋은 곳이었다.

“여기가 바로 김수로왕이 가야에 도착해 구지가를 불렀던 자리입니다.”

우사는 작대기로 땅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머리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구지가는 나도 어릴 때 자주 불렀던 노래요.”

“이 노래는 철기를 가진 김수로왕이 양동에 근거지를 둔 청동기 변진 선주민 추장에게 항복하라고 협박하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구지가를 들은 변진의 추장과 선주민들은 김수로에게 항복하고 김수로를 새로운 왕으로 섬기게 되는 것이죠. 조선으로 흘러들어온 김씨가 처음 세력을 펼친 곳이 바로 이곳 애꾸지입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애꾸지는 애초, 애당초 구지라는 뜻이다. 대성리의 중심에 있으며 이곳에 이주민들의 가야 철기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었다.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거북이는 가미로 선주민의 신, 또는 우두머리이고, 머리는 우두머리를 말한다. 결국 양동리 쪽에 있는 선주민의 수장이 항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참고로 대성리 고분에는 대부분 후기 철기유물이 나오고 양동리 고분에는 대체로 전기 청동기 유물이 출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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