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
일자리 감소 등 사회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 찾아야

▲ 김상곤 울산시 감사관

12월은 개인으로 살기가 참 힘든 시간이다. 송년회,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행사는 사적 시간을 거의 다 소비해야 치러낼 수 있는 거대한 통과의례다. 우리는 이를 통해 평소의 인간관계를 확인하고 또 강화한다. 혹 여의치 않으면 휴대폰 속의 엽서라도 보내야 비로소 안심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집단적인 통과의례를 개인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축제로 만들기도 하지만 더러는 기대보다 너무 빈약한 인간관계의 양과 깊이에 실망,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이 때 기준이 되는 사람과 공간의 범위는 기본적인 삶의 장, 즉 우리 사회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통과의례를 사회생활이라 칭하고,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활동으로 여긴다.

원래 사회라는 말의 어원은 중국의 한자어에서 유래한다. 토지의 신인 사(社)를 중심으로 하는 주민들의 회합(會合)을 가리키는 말이다. 좁은 지역 공동체를 의미하는 유교적인 개념이다. 이 말이 보다 넓은 인간 집단을 의미하는 서구의 society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19세기 중반 일본에 의해서라고 한다. 일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는 딱히 이러한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적합한 말이 없었던 것 같다. 12월의 통과의례도 사실 일본식의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시작, 정착되었다가 송년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단어도 역사와 유래를 따져 보면 그 속에 시대의 변화상이 간직돼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개인(個人)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말이나 글 속에서 너무나 자주 사용되는 평범한 단어일 뿐 아니라 현대사회 모든 권리와 책임의 귀속주체가 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이 마치 우리의 먼 역사로부터 존재해온 언어이자 개념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것 역시 역사적으로 형성돼 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 언어에 등장한 것은 오히려 사회라는 말보다 더 늦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의 어원은 중국어가 아니라 일본어이다. 개인은 서구의 individual을 일본어로 번역한 말이다, 우리나라 말에도 사람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주체적인 인격체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모든 법전과 공적인 표현에 사람이라는 말보다 개인이라는 말이 더 편하게 사용되는 이유일 것이다. 개인은 이제 국가의 문제나 집단의 문제, 또는 가족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 되는 개념이자 가치이다.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확고한 지위를 갖고 있다. 흔히 어려운 일을 변명하거나 더 이상의 설명을 회피하고자 할 때 쓰는 가장 편리한 말이 ‘개인적’이라는 표현이다. 신성한 구역으로,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신화적인 뜻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가치도 사실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다져지고 확장돼 온 살아있는 개념이다.

최근 우리사회에는 개인의 권리 혹은 개인성이 너무 강화돼 개인의 권리와 사회적인 이익이 충돌하는 영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울산은 개인의 권리 주장과 보호에 대한 욕구가 다른 어느 지역 못지않게 강한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표현형식도 항상 최강의 수단에 의존한다. 작은 주장을 위해서도 붉은 머리띠를 둘러야 하고 확성기 속의 비장한 노래로 무장해야 한다. 분규나 투쟁이라는 강한 언어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상대가 존재한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제야 말로 울산은 권리주장의 형식을 재정비하고 무엇이 우리의 권리를 진정으로 침해하는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함께 싸워야 할 상대가 더 이상 회사경영자나 공적권력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인공지능이 장착된 로봇이 우리의 두뇌와 근육을 대신하는 시대에 개인은 무슨 권리를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야 말로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날이 풀리면 시청 정문 앞은 또다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확성기 소리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중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을 잃어가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지역사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함께 넘쳐나기를 기다린다.

김상곤 울산시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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