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민 LS니꼬동제련 이사

욜로, 요즘 자주 접하는 단어이다.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번 뿐이다)’의 앞 글자를 따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 보다는 지금의 행복을 중요시하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을 표현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주로 20대에서 40대까지 세대에서 나타나는 감각적이고 현재 지향적인 소비 패턴, 여행 스타일, 취미 생활 등을 일컫는 말이다. 영미권에서 오래 전부터 자주 인용돼온 관용적 표현인데 2015년 미국 오마바 대통령이 의료보험제도인 ‘오바마케어’ 홍보영상에서 사용하면서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는 ‘오늘 하루만 살것인냥 허세부리는 사람’을 비꼬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많았다고 한다. ‘욜로’가 긍정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충분히 공감가는 사회 문화적 현상일 것이다. 예컨대 Gift는 영어로는 선물이지만 독일어로는 독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주다’라는 의미를 가진 고대 게르만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아 영어에서는 좋은 의미를, 독일어에는 반대 의미를 가지게됐다고 한다.

욜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또 왜 2017년의 유행어로 언급될 만큼회자되는 것일까. 다양한 전문가들의 분석 및 진단 결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키워드를 종합해 보면 그 의미와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저성장, 저금리 시대의 산물’ ‘경제 불황’ ‘불확실한 미래’ ‘현재의 행복’ ‘나중에 후회할까봐’ ‘자신만의 삶의 의미와 가치 추구’ 등의 키워드를 연결해보면 ‘저성장, 저금리 시대에 장기적인 경제불황의 여파로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다는 차라리 현재 행복을 추구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며, 나중에 후회하지않고 지금 하고싶은 것을 하는 것이 자기 만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길이다 라는 인식의 확산’ 정도가 될 수 있겠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는 명료한 현실 인식과 ‘지금의 인내와 고생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다’라는 회의적 현실 인식이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욜로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지금’에 충실하자는 그 현재적 가치에 의미를, 부정적인 입장은 속된 말로 그러다가 나중에 골로 간다면서 미래 가치를 더 강조한다. 둘 다 옳다고 말할 수 있다. 인생은 한번 뿐이기 때문에 현재에 충실하자고 할 수도, 한번 뿐 이므로 훗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지금 인내하고 좀 더 노력하자고 할 수도 있다. 개인의 상황과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각자 주어진 삶의 가치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욜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가치 중립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현재든 미래든 궁극적으로 삶을 풍족하게 만들자는 의미로서의 욜로는 현재와 미래를 양분하여 양자의 의미와 가치를 상호 배척하고 나머지 한쪽을 소모하고 마는 것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동일 선상에서 이해하고 상호 발전적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바탕되어야 한다. 관점을 달리 하면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고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가 분리될 수 없는 이유이다. 인생은 한번만 산다기 보다 매일 살고 오직 한번 죽는다. 통틀어 한번만 살겠지만 동시에 매일 살고 있다는 명제를 욜로 현상을 통해 되새겨 봤으면 한다. 젊은 세대는 아무리 노력해도 기성세대만큼 사회 경제적인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좌절감에서 비롯된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욜로를 소비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심리적 가역반응으로 이른 바 탕진잼이라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만 이용해서도 안될 것이다.

이제는 586세대가 된, 앞선 기성세대였던 부모 세대로부터 그 분들보다 더 나은 세상을 물려 받은 지금 기성세대의 역할이 절실한 지점이다. ‘욜로’를 동경하는 그러나 각자의 이유로 정작 실행하지는 못하는 지금 젊은 세대 대부분의 청춘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꿈을 버리지 않고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그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지금 기성 세대를 일컬어 ‘부모 세대보다 잘 사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보다 잘 살은 처음 세대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한 농담이 단지 농담으로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기성 세대로서 다음 세대를 위한 각자의 사과나무를 한 그루씩 심어 보는 것은 어떨까.

민경민 LS니꼬동제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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