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시종일관’은 처음과 끝을 하나로 꿴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나 의지, 뜻이 변하지 않는 모습을 말한다. 가령 어떤 학생이 학기 초부터 지금까지 아침 일찍 등교하고 자습 태도가 좋은 경우 시종일관하는 태도로 성실하게 학교생활과 학습에 임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학교 한문 시간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수업에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참여한 학생에게 주는 도장을 모으는 도장판의 이름이다. 1학기 한자어, 사자성어를 배운뒤 2학기 한문 문장을 배우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열심히 수업하면 할수록 잠드는 학생이 많아지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짜낸 묘책이 바로 시종일관 도장판이었다.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1개를 15자 내외로 기록해 검사받는다. 그날 분량을 다 배우면 학습 마무리를 활동을 하고 도장판을 가지고 나와 수업을 함께 돌아보는 것이다. 수업 내용에 따라 아이들은 참으로 다양하고 재미난 생각들을 썼다. 나의 수업은 하나지만 아이들이 받은 수업은 그 반의 인원수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이어서 이것은 때로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문장에 벌레 충이라는 글자가 많이 나온 날 아이들의 도장판에는 ‘벌레 충(蟲)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말이, 본문에 어려운 한자가 많아서 번역하기 힘들었던 날에는 ‘한자는 一(일), 二(이), 三(삼)만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표현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복습하는 의미에서 필사한 날에는 ‘한자를 잘 쓰는 우리 아빠가 다시 한번 멋있어 보였다’라는 말들로 한자를 쓰던 세대의 사람들을 추억하게 해주었다. 학습을 반성하는 내용으로 ‘발 족(足)이랑 이 시(是)가 헷갈렸다. 다음부터는 안 헷갈려야겠다’라는 다짐은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한자의 형태적 유사함을 인식하고 구별하려는 노력이라 예쁘게만 느껴졌다. ‘문장이 예쁘다. 하지만 오늘따라 너무 졸렸다. 선생님께 미안하다’라는 말로 스스로 이겨내지 못한 잠을 미안해하며 도장을 받으러 나와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운 듯 도장을 받는 학생은 나의 수업이 지루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했다.

사실 이 모든 게 유인책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도장 모으는 재미에 잠이 몰려오는 5교시에도 애써 잠을 참아가며 수업 내용을 뭐든 하나 기억에 남기려고 노력했다. 지금 18번 수업의 기록이 쌓이고 쌓여 아이들은 도장판만 보고도 수업 내용을 기억해낼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억지로 듣던 수업에서 이제는 한문을 번역하는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는 학습자가 되었다. 내게도 아이들과 수업 내용을 가지고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태껏 교사는 수업 종이 치면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했다. 학생들은 교과 지식을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기만 했다. 하지만 올해 나의 한문 수업은 학습량은 적지만 한문이라는 교과가 주는 성찰로 세상을 보게 했고 수업에 참여한 학생이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고 자부한다. 물론 주요 과목이 아니기에 부린 호사일수도 있다. 이런 호사일망정 나의 이런 시종일관하는 수업은 아이들에게 학습에 대해 시종일관하는 기쁨과 자세를 가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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