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자 아닌 일반인들의 창작활동
생활예술은 삶을 보다 풍성하게 해
다채로운 ‘문화울산’ 밑거름 되길

▲ 홍영진 문화부장

한 미술단체가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1년을 정리하는 회원전을 시작했다. 작가들 작품 속에서 전시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방송국 아나운서가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고보니 그림이 그 사람을 꼭 닮았다. 따듯한 색감도 그렇고, 격의없이 편안한 구도였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 사람의 분위기나 말투가 느껴졌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구석으로 걸어달라 했는데 눈에 잘 띄나보다”며 쑥쓰러워했다.

비슷한 일은 불과 얼마 전에도 있었다. 외자 이름을 쓰는 한 시인이었는데 민화 전시를 준비하는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지도교사와 문하생이 다함께 전시회를 갖는데 시인의 작품과 그가 그린 민화와의 간격이 멀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는 꽤 오래 전부터 민화를 그려왔다. 지금처럼 민화가 대중화 하기 전부터 민화에 심취했다. 마음을 정진하는 기회였고 민화를 그리는 그 시간이 그저 좋았다고 알려줬다. 똑부러지는 특유의 말투에다 맺고 끊음이 확실하던 시인에게서 그 때부터 그윽한 향기가 나는 듯 했다. 한층 부드러운 이미지로 다가왔고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 한지를 물들이는 안료처럼 가까워 질 기회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보험설계사인 한 지인은 울산여자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는 졸업한 지 30년이 지난 요즘 또다시 옛 학교를 찾고 있다. 동창생 모임인 창포합창단은 매주 한번씩 모교 강당에서 연습을 한다. 1년에 한번씩 전문음악홀에서 프로무대 못지않은 콘서트도 펼친다. 그는 노래를 부르면 가슴 속 응어리가 풀어진다고 했다. 어려울 것 같은 화음을 맞추면서 성취감도 맛봤다.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나서기가 부끄러웠으나 경험이 쌓일수록 달라졌다. 가족과 관객들에게 좀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졌고, 없던 프로의식이 마구 자라면서 일상생활에도 활력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문화예술을 지척에 두고 늘 보는데 만족하던 이들이 이처럼 문화예술을 직접 수행하는 예술인으로 변신하고 있다. 문화부 기자로 15년을 살아 온 필자도 최근에 비슷한 기회를 얻었다. 몇몇 지인들과 오랜 세월 모임을 이어왔는데 그 분들 덕에 취재기자가 아니라 문화행사 속 주인공이 돼 창작과 기획의 묘미를 간접경험하게 됐다. 한글서예가, 서양화가, 민화작가, 무용인, 퀼트작가 등 구성원이라 해 봐야 여섯 명 뿐인 친목 모임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자고 의기투합 하더니 회원 전원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행사로 커져 버렸다. 마땅히 내놓을 게 없던 터라 최근 다녀온 여행지 사진을 몇 점 냈는데 준비하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연말을 맞아 숨가빴던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주변과 함께하자는 소박한 취지였지만, 막상 판을 펼쳐놓고보니 알음알음 찾아 온 관람객들 관심이 예상 밖에 뜨거웠다. 바쁜 연말 짬을 내 일부러 전시장을 방문한 지인들에겐 송구했지만 사실 다음 번 행사를 상상하며 어떤 걸 보여줄까 욕심도 생겨났다.

생활예술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생활예술에 대해 사전은 ‘실생활의 일부분이 되는 예술. 일반 민중이 창작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실생활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생활양식’ 안으로 녹아들어 우리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 예전부터도 있었으나 각종 문화예술정책이 생활예술에 포커스가 맞춰지며 새롭게 부상 중이다. 문화부 기자로 또 한 해를 살았다. 올해는 어깨너머로 지켜봤던 문화예술 속으로 한발더 들어가는 값진 경험을 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문화도시 울산에 좀더 거센 생활예술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홍영진 문화부장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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