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하지왕이 구투야에게 물었다.

“죽일 사람 있다고요?”

구투야가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날이 어둡고 저물었으니 우선 저희 산채에서 쉬고 가시지요. 특히 저 분은 어리지만 제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니 잘 모시겠습니다.”

구투야는 특별히 하지왕을 가리키며 일행에게 산채에서 쉬도록 권했다. 구투야가 사특한 자 같지는 않았지만 도적의 소굴에서 잔다는 것이 께름칙했다.

하지왕이 사양하며 말했다.

“아니오. 우리는 급히 갈 데가 있소.”

우사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일단 모추는 먼저 대가야로 보내 정황을 알아보게 하고 날도 저물었으니 우리는 여기서 일박을 하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지왕은 단걸음에 대가야로 가서 어머니의 병세를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사는 전에부터 함정일 수가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 알겠소. 여기서 머무르고 내일 새벽에 떠나도록 하지요.”

모추는 말을 타고 검바람재를 넘어가고 하지왕과 우사는 구투야의 산채로 갔다. 산적들의 산채는 산중에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숲과 바위 사이에는 통나무와 띠로 만든 크고 작은 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두목의 산채는 맨 위 바위 절벽 밑에 제법 격식을 갖춘 기와집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가운데 호피가 얹힌 상좌가 있고, 좌우로 날선 칼과 창이 걸려 있고, 번들거리는 탁자와 가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산적들은 동굴이나 움막에 사는 걸로 알았는데 마을 입구에 망루가 서 있는 게 특이할 뿐 여느 작은 산촌과 다름이 없었다.

구투야가 말했다.“누추한 곳을 방문해주셔서 고맙소이다.”

구투야는 술과 안주를 대령했다. 술은 동동주에 안주로는 말린 노루고기가 올라왔다.

“자, 우사 선생이라고 했소. 오늘밤은 죽 드시고 편히 쉬시다 가시오.”

술잔은 산양의 뿔 모양을 토기 각배였다. 입구가 넓고 목인 긴 각배는 보기보다 술이 많이 들어갔다. 둘은 끊임없이 뿔잔을 부딪치며 건배하고 권커니잣커니 하며 술을 고래로 마셨다. 하지왕은 술이 약하고 아직 어린 입에 술맛이 써 막걸리 한 잔으로 만족했다.

하지왕이 술이 거나하게 된 구투야에게 물었다.

“아까 죽일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함은. 지금은 지나가는 과객들의 봇짐을 털어 먹고 살지만 당신이 타고 있는 그런 좋은 말과 여비가 마련되면 국내성으로 가 죽일 사람이 있지.”

“그 사람이 누구요?”

“누구긴 누구겠어. 우리 가문의 원수이자 나라의 원수인 광개토왕이지.”

구투야는 고리눈에 살기를 비치며 말했다.

 

우리말 어원연구

사특. 【S】sath(사트). 【E】vicious, wicked. 삿되다. 사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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