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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문화관광해설사의 비망록-울산여지승람
[문화관광해설사의 비망록-울산여지승람]뼈아픈 역사의 상흔 간직한 울산 최초의 시민공원62·끝) 학성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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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8  21: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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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의사에서 내려다본 학성공원.

울산읍성의 돌 빼내 지은 왜성
420년전 조명연합-왜군 전투 벌어져
7년의 왜란에 울산 쑥대밭으로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울산성지보존회 앞세워 공원화·보존
초대회장이었던 김홍조 공덕비 세워

오랜세월 울산 유일의 공원으로
백일장 등 각종 문화행사 개최
화전놀이·데이트 장소로도 각광

학성공원의 옛 명성 되찾아주고
시민의 역사의식 고취시킬 묘안 기대


울산여지승람은 이번 회로 마무리됩니다. 그 동안 4분의 필진(전·현직 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이 1년 여 동안 울산의 문화재 현장을 직접 답사, 역사문화 스토리로 이끌어왔습니다. 수고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본보는 내년 새로운 기획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충의사

공원은 도시의 품격에 큰 영향을 준다. 불과 30년 전만해도 울산에는 공원이라고는 학성공원밖에 없었다. 도시공원의 수가 387개(2016년 말 현재)나 되는 오늘날과는 격세지감이 있다. 시민 1인당 공원 면적이 11㎡로 광역시 중 으뜸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학성공원은 울산 최초의 공원이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뼈아픈 역사가 묻혀있는 곳이다. 420년 전 정유년 12월부터 그 이듬해 9월까지 이곳에서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1, 2차 도산성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2차 전투를 끝으로 7년 왜란의 막은 내렸지만 울산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도산성은 학성공원에 있는 울산왜성의 당시 이름이다.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읍성과 병영성의 돌을 빼내 와서 만든 것이다. 섬처럼 보이는 산에 있다고 도산성(島山城)이라 불렀고, 조선후기에는 시루를 엎어놓은 모양에 유래해 증성(甑城)이라고도 불렀다.

   
▲ 울산왜성

학성공원 조성 유래는 성의 2지환(二之丸) 동쪽 끝에 있는 김홍조 공덕비 안내판에서 엿볼 수 있다. 학성공원은 구한말 선각자인 김홍조가 조성했고, 1928년 울산공원이란 이름으로 개원됐으며, 공적비 비문은 박영효가 지었다고 되어 있다. 왜성 터를 공원화한데에는 일제강점기 식민지정책이 맞물려 있다. 조선 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울산성지보존회를 앞세워 왜성을 보존하려던 것이다. 김홍조는 성지보존회의 초대 회장이었다.

민족의 상처가 배어있는 학성공원 입구에 최근 중구청이 당시 조선군 도원수 권율과 명나라 장수 양호와 함께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가 여론의 철퇴를 맞고 계획을 취소했다. 퇴락하고 있는 학성공원 일대를 역사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도시경관 조성사업인 ‘학성르네상스’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울산왜성 복원과 공원조성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공원 준공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애국 단체가 있었음이 큰 시사를 준다.

   
▲ 도산성 전투 기록 빗돌들

뒤얽힌 역사야 어쨌든 학성공원은 오랜 세월 울산 유일의 공원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렇다 할 문화공간이 없었던 때라 시 전체 규모의 백일장 및 그림 그리기 대회 등 울산의 중요 문화 행사는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학생들의 소풍, 어른들의 화전놀이, 시민들의 휴식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이곳만한 곳이 없었다.

시골뜨기였던 내가 학성공원에서 추억을 쌓기 시작한 것은 공원이 가까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부터였다. 4월 벚꽃의 화사함과 가을 단풍의 쓸쓸함을 주체할 수 없을 때나 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문학소녀였던 짝지와 함께 홀린 듯 공원을 올랐다. 문학 얘기를 나누며 내게 글을 끼적이도록 동기를 주었던 그 친구는 요즘 손녀를 본다고 모임에도 못 나온단다.

옛 추억을 찾아 오랜만에 학성공원에 갔다. 입구에 최근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빗돌 13개가 줄지어 있는데 도산성전투가 날짜별로 요약되어 있다. 3지환(三之丸)에 서있는 박상진 의사 추모비와 서덕출 선생의 봄편지 노래비가 감회에 젖게 한다. 10여년 전, 근무지가 공원 근처여서 점심시간이면 일과처럼 공원을 한 바퀴씩 산책했다.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그 때나 마찬가지이지만 공원의 관리 상태가 다소 나아진 것 같아서 위안이 된다.

정상부인 본환(本丸)의 사뭇 달라진 모습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태화사지십이지상 사리탑(보물 441호)은 울산박물관으로, 충혼탑은 현충탑으로 개명해서 울산대공원으로 옮겨가 빈자리가 휑하다. 겨울이어서 더 그런가보다.

울산왜성 전투는 얼마나 참혹했던가? 포위된 왜병들이 기아에 시달려 종이와 흙벽을 끓여먹고 말을 죽여 피를 마시고 오줌을 마셨다고한다. 그런데도 성을 함락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13일 간의 1차 전투에서 조명연합군과 왜군 병사 1만2000명이 전사했다니 1만5000평 남짓한 성 안이 시체로 뒤덮였을 것이다. 아직도 공원 바닥에 그들의 혈흔이 보이고 공중에는 아비규환에 빠진 병사들의 곡성이 난무하는 듯하다.

동백꽃을 든 소녀상이 눈에 띈다. 왜란 때 학성에서 약탈해간 오색팔중 울산동백을 1992년에 울산으로 되찾아 온 것을 의인화 한 것이라고 하는데 어딘가 생뚱맞다. 전에 없던 동백나무가 공원 여기저기에 많이 심어져 있어서 궁금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우중충한 모습으로 서있는 ‘울산학성 사적 제9호’란 제목의 안내판도 사연을 안고 있다. 일제 때 고적 제22호였던 학성공원은 해방 후 사적 제9호(1963년)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에 ‘울산왜성’이란 이름으로 울산시 문화재자료 제7호로 격하됐다.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에서 울산왜성과 서생포왜성 등 10개의 왜성이 국가지정 문화재에서 제외된 것이다.

벤치에 앉아 까마득한 옛날을 더듬어본다. 50년 전 울산공업축제(지금의 처용문화제) 백일장에서 운문부 차상을 했는데 어디에 앉아서 시를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평생지기와 은빛으로 반짝이던 태화강 물을 바라보며 앞날을 꿈꾸곤 했다. 우리 벤치를 정해놓고 만나던 식의 낭만적 데이트는 구시대 유물이 되었다. 태화강 너머로 펼쳐진 빌딩숲이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정경을 일그러뜨리고 숨통을 조여 온다. 학성공원의 배웅 속에 건너편 학성산으로 향했다.

   
▲ 이선옥 수필가·전 울주명지초등 교장

학성공원의 북쪽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학성산이라 하는데, 신라시대에 계변성이라는 토성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 임진, 정유 양란에서 구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들의 위패를 모신 충의사와 울산 최초의 서원인 구강서원이 여기에 있다. 고등학교 때, 교실까지 아카시아 꽃향기를 보내주던 이 산도 예전 같지 않다. 산 일대에 산책로를 조성해서 역사적 장소들을 아우르며 제2학성공원이라 부르고 있다. 충의사를 참배하고 구강서원을 거쳐 학성산 산책에 나섰다. 바닷가에서나 보았던 주상절리가 이곳에도 있다니 신기하다. 자연이 잘 보전된 산책로에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7년 왜란에서 도산성전투는 육상에서 왜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로 평가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근래에 도산성전투와 관련해서 특별전시회 개최, 뮤지컬 제작·공연, 연구 결과물 간행 등의 사업이 추진됐지만 시민에게 확산되기에는 역부족이다. 학성공원에게 옛 명성을 되찾아주고 시민들의 역사의식도 고취시킬 수 있는 묘안은 없는 것일까.

이선옥 수필가·전 울주명지초등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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