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 동화부문 당선작

 

세상이 꽁꽁 얼어붙을 듯 추운 날입니다. 산골마을 공터에 이동도서관 버스가 찬바람을 맞고 서 있습니다. 성에가 잔뜩 낀 유리창 안으로 사서 선생님이 홀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산골마을에는 평소에도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집들이 드문드문 있는데다 그나마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책을 빌리려면 먼 산길을 걸어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늘 같이 추운 날에는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찬바람 속을 걸어와서 허탕이라도 치면 큰일이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휘이잉 휘이잉 바람이 불어 올 때마다 나뭇가지며 돌들이 데구르르 바닥을 굴러다닙니다. 누군가 오는 소리인가 싶어서 선생님은 창밖을 내다봅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람쥐 몇 마리가 먹이를 구하려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도토리라도 챙겨왔으면 좋았을 걸.’

도로변까지 내려온 다람쥐를 보며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똑똑.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자 흘레바람이 사납게 버스 안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저도 모르게 감겼던 눈을 뜬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얼굴이 작고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가 우비처럼 생긴 옷 안에서 오돌오돌 떨고 서 있었으니까요.

▲ 동화·동시 일러스트=김천정

선생님은 얼른 아이를 버스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조금 전부터 날리기 시작한 눈발이 아이가 쓰고 있는 모자 위에 솜털처럼 떨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손바닥으로 쓸자 거짓말처럼 사르르 녹아서 사라졌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를 난로 옆에 앉힌 후 석유난로의 심지를 돋우었습니다.

먼 숲길을 걸어왔는지 아이에게서 떡갈나무며 굴참나무 냄새가 났습니다. 무릎담요를 가져다 어깨에 걸쳐주자 아이가 포도알처럼 까만 눈을 들어 선생님을 봤습니다.

“혼자 왔니?”

선생님이 묻자 아이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른은 어디 계시는데?”

다시 묻자 아이는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킵니다. 선생님이 창밖을 내다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조금 떨어져서 아이를 봤습니다. 책을 읽을 생각이 아예 없는지 아이는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추위에 하얗게 얼었던 볼이 발그스레해지자 선생님은 아이 옆으로 다가가 앉았습니다.

“책 읽을 줄 아니?”

아이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습니다.

‘그랬구나!’

선생님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팔을 뻗어 가까운 책장에서 ‘아기양과 나비’를 꺼냈습니다. 아이가 잘 볼 수 있도록 무릎 위에 책을 펼쳐놓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풀 나풀 나비는 날아가서 민들레꽃에 앉았습니다. 또가닥 또가닥 아기 양은 나비를 따라가서, “네 집은 어디니?” 하고 물었습니다. 나비는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이 다 내 집이야. 나는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으니까.”

나비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선생님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계속해서 읽어 주었습니다.

아기양이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있어 줘.” 나비가 말했습니다. “나는 겨울이 되기 전에 멀리 날아가야 해. 난 너처럼 따뜻한 털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 나비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갔습니다.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조용히 들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서운한 얼굴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책을 한 권 더 꺼냈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습니다. 선생님은 ‘장화신은 고양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방앗간 주인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나자 첫째 아들과 둘째아들이 모든 재산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막내에게 남은 것은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가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몸을 웅크리고는 벌벌 떨기까지 했습니다.

“어머, 미안하구나.”

선생님은 얼른 책장을 덮었습니다. 아마도 고양이에게 크게 놀란 적이 있는가 보았습니다.

“괜찮아. 선생님도 너 만할 때 개한테 손가락을 물린 적이 있었어. 한동안은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 나도 크게 울곤 했어.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개 두 마리와 살고 있는걸.”

선생님은 아이의 등을 감싸 안아 주었습니다. 아이의 떨리던 몸이 차츰 차분해졌습니다.

선생님은 고양이가 나오는 책을 피해 다른 책을 더 읽어주었습니다. 아이는 산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산새가 지저귀는 부분에서는 귀 기울여 듣는 듯 했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부분에서는 몸을 흔들어댔습니다. 개구리가 나오자 펄쩍 뛰어 따라했습니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였습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자 눈보라가 버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저도 모르게 감겼던 눈을 뜬 선생님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봤습니다. 아이와 꼭 닮은 엄마가 문밖에 서 있었으니까요. 오랫동안 밖에서 기다렸는지 엄마 머리 위에 소복하게 하얀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서둘러 엄마를 버스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아이에게처럼 엄마에게도 갈참나무며 졸참나무 냄새가 났습니다. 엄마를 본 아이는 달려가 품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엄마는 몇 번이나 머리를 꾸벅여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잘 들어줘서 책 읽는 일이 행복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책을 빌려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이는 잠깐 시무룩해졌지만 곧 괜찮다는 얼굴을 했습니다.

엄마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선생님에게 내밀었습니다. 쭈글쭈글 마른 밤 몇 알이었습니다.

버스 문을 열자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오네!”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엄마와 아이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스 밖으로 성큼 나가 눈밭을 걸어갔습니다.

“아이, 추워.”

선생님은 버스 문을 닫았습니다. 창문 밖을 내다 봤지만 엄마와 아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람쥐 두 마리가 나무 위를 오르내리며 즐겁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도 돌아가야겠다.”

선생님은 석유난로의 심지를 내리고 창문 커튼을 닫았습니다. 도서관이 있는 큰 마을을 향해 눈 오는 길을 버스로 달려갔습니다.

 

▲ 이서영 경상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자

당선소감 / 다른 이들에 위로·즐거움 되는 글 쓰고파

 저는 아직 덜 자란 어른인가 봅니다. 소설보다는 동화가 좋으니 말입니다. 겉으로 보면 툴툴거리고 불만 많고 지적하기 좋아하는 영락없는 꼰대인데 제 맘속에서는 다람쥐, 여우, 오소리 같은 동물들이 어울려 살면서 즐겁게 뛰어 놀고 정답게 속삭이고 정감을 나누니 말입니다. 아닌 척 멋진 척 근사한 어른인 척 써지면 좋으련만, 글이란 결국 자신을 드러내게 되는 가 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내 안의 아이는 아직 세상에 무조건 고개 숙이지도 잘난 척 하지도 권력 앞에 비굴하지도 않으니까요.

 인내심 부족하고 성격까지 까칠한 어른이라 동화 쓰는 일이 좋지 않았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내 삶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일들이 그렇듯 동화를 만난 것 역시 우연이었습니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연고도 없는 곳으로 이사와 살면서 이방인으로의 낯섦과 외로움에 잠식되어갈 즈음 동화는 내게로 뚜벅뚜벅 걸어와 주었습니다. 동화가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날들이었고 동화와 함께라서 즐거웠습니다. 동화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즐거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아직은 졸작인 제 글을 어여삐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경상일보에게 감사드립니다. 동화의 씨앗을 품게 해 주신 안점옥 선생님, 제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게끔 격려해 주신 배봉기 교수님, 서로 묻어 줄 때까지 오래오래 글 쓰고 살자고 손가락 걸어 약속한 이야기 심과 줌스 여러분 감사합니다. 늘 옆에서 지켜 봐 준 남편과 두 딸 별이와 솔이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 고맙고 사랑합니다.
약력
-서울 출생
-숙명여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 배익천 경상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심사위원

심사평 / 정통 동화다운 구성과 순수함에 선정

 본심에 올라온 여덟 편 중에서 세 편을 거듭 읽었다. 세 편의 공통점은 제목이 주는 동화적 느낌이었다.

 ‘의자’는 추상적이고 묵직한 이야기를 할 것 같았는데 수긍이 가는 따뜻한 이야기로 매듭을 지었다. 그러나 경비실 할아버지의 작위적이고 장황한 대사가 감동의 장애가 됐다.

 ‘너를 기다리고 있어’는 다 읽을 때까지 ‘너’를 궁금하게 하는 솜씨로 동화다운 동화를 쓸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나’와 완이의 나이를 짐작하게 하고 과격한 아빠를 순화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눈 오는 날’은 세 편 중에서 가장 폄범한 제목이다. 그러나 가장 동화다운 동화이기도 하다. 동화와 소년소설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읽는 모든 읽을거리를 ‘동화’라고 혼동하는 요즘에 무엇을 동화라고 해야할까에 답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동화는 동화답게, 소년소설은 소년소설답게 쓰고 부르자는 뜻이다.

 ‘눈 오는 날’은 다람쥐를 의인화했지만 의인화 동화는 아니다. 사서 선생님의 눈과 마음을 빌려 눈 오는 날을 그린 한 폭의 수채화다. 그러나 동화라는 옷을 따뜻하게 차려 입긴했지만 무엇을 말할까가 부족하고, 처음부터 두 마리 다람쥐만 등장시켰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렇지만 ‘동화’라고 불러서 가장 다소곳이 다가서기에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모든 응모자에게는 동화는 누구나 쓸 수 있고, 좋은 동화는 항상 곁에 있기에 맑고 밝은 마음으로 글감을 골라 생각하고 쓰고 고치기를 숨 쉬듯 하라는 당부와 함께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약력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동화집 <꿀벌의 친구> <우는 수탉과 노 래하는 암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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