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 소설부문 심사위

▲ 유익서 경상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위원

신춘문예 응모작품을 대하면 가슴이 먼저 설렌다. 기발한 상상력과 참신한 어법으로 선배 작가들을 놀라게 할 문제작이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 가운데 ‘세포의 자살’ ‘방관의 냄새’ ‘귀환’ ‘심해’ 등 네 편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생명 연장 의료기술이 보편화된 2130년. 80년을 산 두 노인이 다시 80년을 살 수 있는 생명연장신청을 두고 갈등하는 내용의 ‘세포의 자살’은 만화적(?) 상상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가, 내용이나 구성에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살인 현장을 목격한 고시원 총무의 심리적 추이를 그린 ‘방관의 냄새’는 인간 행위의 작위와 부작위에 따른 결과의 차이와 거기에 대한 도덕적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이런 문제적 주제에도 불구하고 다소 애매한 구성과 표현 등이 작품의 이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돈으로 산 여자로부터 얻는 위안 외에는 세상을 사는 낙이 없는 불운한 우유배달꾼의 재수 옴 붙은 날의 고달픈 행적을 촘촘히 그려나간 ‘귀환’은 읽는 동안 줄곧 가슴이 짠했다. 배달을 거절당하기도, 우유를 분실하기도, 남은 우유를 마시고 갑작스럽게 일어난 복통과 설사로 낭패를 겪기도 하는 고단하고 남루한 그와는 달리 우유배달을 받는 안락한 35층 고층아파트 주민들의 멸시와 오만 등 이런 대조적인 현실을 차분하게 그려나간 솜씨가 여간 만만치 않았다.

원양어선을 타고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동력으로 험난한 세파를 헤쳐 나온 한 여인의 기구한 생애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비롯된 상흔을 온몸에 켜켜이 지닌 귀신고래의 행적을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의 작업을 통해 오버랩 시키며 삶과 죽음에 대한 웅숭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심해’는 문제적 작품이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후 자기 삶을 후회하고 온갖 추악한 모습을 보이며 초라하게 죽어가는 여인과 급작스럽게 바뀐 해류에 밀려 모래사장에 조난당한 후 내려쬐는 태양열과 내장이 터지는 고통을 견디며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귀신고래의 유사한 죽음 또한 의미의 자장을 넓혀간다.

‘귀환’과 ‘심해’를 두고 한 동안 번민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심해’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무난한 수준작인 ‘귀환’과는 달리, 목숨 가진 것들의 삶과 죽음, 번민과 고뇌 이런 오래 묵은 그러나 언제나 문제적인 주제를 솜씨 있게 다루며 의미의 자장을 넓혀나간 ‘심해’를 당선작으로 택한 것이다.
약력
-한국일보 신춘문예 가작 /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 ‘새남소리’와 창작집 <바위물고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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