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권역외상센터의 현주소는

▲ 중증외상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전문화 된 권역외상센터는 예산확보가 어려워 사실상 제 몫을 못하고 있다. 울산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전경과 외상 중환자실(아래).  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전국 9곳 권역외상센터 열악한 실태
최근 이국종 교수 발언으로 이목 집중
예산 200억 증액은 ‘새 발의 피’
울산센터는 그중 가장 작고 열악한 환경
환자 살릴수록 센터 적자폭은 더 늘어
의료시스템 한계 근본적 해결책 필요

울산권역외상센터(이하 울산센터)의 ‘닥터카’가 1월께 운영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대형사고의 현장 진료와 중증외상환자 발생시 신속한 이송 등 ‘도로 위의 응급실’로 불리는 ‘닥터카’의 운영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설치된 울산센터의 열악한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지난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중상을 입은 석해균 원장에 이어 최근 총격을 뚫고 남한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의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의 권역외상센터의 열악한 실태에 대한 언급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교수의 발언에 국민들이 호응하면서 정부의 올해 권역외상센터 예산이 200억원 가량 증액됐지만 의료계는 열악한 현실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울산센터는 전국 최소 규모인 등 오히려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울산대학병원이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제외가 확정돼 지역주민들의 의료복지에 대한 위기감은 더욱 크다. 울산센터가 처한 현 주소와 문제점 등을 살펴보고, 센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권역외상센터의 역할과 의미

권역외상센터는 교통사고, 추락 등으로 인한 다발성 손상, 과다출혈 등의 중증외상환자에 대해 ‘365일·24시간’ 병원 도착 즉시 응급수술 등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전용시설과 장비, 전문인력을 갖춘 외상전용 전문치료센터를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1년부터 외상 분야에 대한 국민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예방가능한 외상사망률(전체 사망자 중 적절한 진료를 받았으면 생존했을 것으로 예상되나 그렇지 못해 사망한 자의 비율)을 낮추기 위해 국가차원 외상전문 진료체계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외상사망률이 15~20%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30.2%(2015년 기준)로 현저히 높은 실정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20년까지 외상사망률을 20% 미만으로 낮추겠다며 전국에 권역외상센터를 지속적으로 선정·설치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전국에 9개소가 설치돼 운영되고 있으며 17개소가 선정돼있다.

이렇게 설치된 권역외상센터는 24시간 응급수술 준비체계 운영, 전용 중환자병상 가동 등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신속하고 집중적인 치료를 제공하며 외상치료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외상분야연구, 외상통계 등 각종 데이터 생산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전국 최소 규모 울산센터 더 열악, 닥터카도 중단 위기

울산대학교병원은 지난 2013년 보건복지부의 권역외상센터 공모에 지원해 최종선정됐다. 울산센터는 당시 공모선정으로 시설장비비 80억원, 매년 연간 운영비 7억2000만~27억6000만원을 차등 지원받고 있다.

울산센터는 개소 이후 시설과 장비, 인력 등이 다소 나아졌지만 바뀐 것이 크게 없다. 당초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하면서 정부가 기대했던만큼 외상사망률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0년 우리나라 외상사망률은 35.2%에서 2015년 30.2%로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닥터카 운영이 중단 위기에 처한 것은 열악한 울산센터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2016년 12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닥터카는 같은 해에 울산센터가 전국의 외상센터 평가 결과 인센티브를 받아 재투자를 통해 만든 결실이다. 이 닥터카는 울산대학교병원이 고위험 약물 투여와 흉관 삽입 등 전문 시술을 시행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연장하는 데 효과를 거뒀다. 실제로 중증외상환자의 소생률이 향상되고 골든타임이 확보되는 효과를 거두면서 지난 2016년 9월부터는 24시간 운영으로 운영시간을 확대했다. 하지만 1월부터는 예산이 없어 운영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경규혁 울산대학교 권역외상센터장은 “닥터카는 울산이라는 지역 특성에 맞게 헬기를 보완하고 중증외상환자를 조금이라도 빨리 조치할 수 있는 이송시스템이지만 이제껏 임시사업으로 운영돼왔다”며 “이 자체로 수익이 난다면 지속적으로 운영이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센터에 따르면 울산센터에는 전문의 14명, 간호사 70여명의 인력이 소속돼있다. 지난해 센터 치료를 거쳐간 중증외상환자는 420~450여명. 울산센터를 포함해 전국 권역외상센터 중 필수인력 전담의 20명을 모두 채운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울산센터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 외상 전문의 3명 중 2명꼴로 한 달에 적어도 7번, 많게는 10여번까지 밤을 새우며 당직일수를 채우고 있다.

게다가 환자를 살릴수록 센터의 적자가 쌓여가는 현재 의료시스템의 문제·한계는 근본적 해결책 마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센터의 한 해 수익률은 5% 정도로, 매년 10억~2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애초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아니지만 정부로부터 인건비 등을 지원받고 있는 점을 감안해도 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다. 병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인 셈이다.

경 울산센터장은 “제대로 된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려면 제대로 된 인력이 갖춰지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업계에서 현실적으로 적용되기란 정말 힘들 것이라 본다”면서 “현재 형편없는 의료수가(의사 등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 체계를 아무리 올려준다해도 병원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비용에 대해서 정부나 지자체의 직접 지원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해결책은 예산 증액? 근본적 해법 마련돼야

권역외상센터가 항상 환자로 가득찰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느 때 닥쳐올 지 모를 환자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은 상시 대기해야 하고, 그에 따른 근무환경이 너무나도 열악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박탈감과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강도 때문에 힘들어서 그만두는 의료진이 속출하고, 센터를 지키는 남은 의료진이 감당해야 할 일의 강도는 배가 돼 또다시 그만두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같은 현실에 최근 이국종 교수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삭감될 뻔 했던 보건복지부의 올해 권역외상센터 예산은 의료진의 급여개선, 닥터헬기 추가배치 등의 목적으로 200억원이 증액된 600여억원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200억원이 증액됐으니 권역외상센터가 가진 문제점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의료계 인사는 거의 없다.

경 울산센터장은 “물론 예산 지원이 센터 운영에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장 의료진의 처우개선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며 “닥터헬기만 보더라도 그렇다. 무조건적인 지원이 능사는 아니다. 지역적 특성에 맞게 지원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울산은 닥터헬기를 지원받더라도 내릴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도로로 이송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이유”라고 덧붙였다.

정세홍기자 aqwe0812@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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