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란 삼산초등학교 교사

12월은 해마다 그렇듯 바쁘고 또 바쁘다. 농부가 한해 농사를 수확하듯 교사는 12월에 1년 농사를 수확한다. 내년도 교육계획수립을 위한 설문조사 및 자료 수집통계, 학기말 평가 실시 및 결과 처리,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축제와도 같은 재능발표회. 이 모든 일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며 학교는 거대한 유기체처럼 하루를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 또는 그 이상으로 기다란 그림자처럼 끌고 지나간다.

몇해 전부터 일선학교들은 학생들의 진로교육에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재능이나 흥미를 일깨워주고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미래인재양성에 중요하다는 교육적 취지에서다. 학기말평가가 끝난 시점부터 방학 전까지를 주로 진로탐색주간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평가가 끝난 교실은 마치 벼베기가 끝난 논처럼 황량하거나 무방비상태로 자유롭기 일쑤다. 그 동안 잘 정돈되어 있던 질서도, 학업에 대한 열기도 쉽게 식어버리고, 천방지축 뛰고 소리 지르고 난리법석을 부린다.

이런 틈새시간을 알차고 보람있게 채워주는 것이 바로 꿈·끼 탐색주간 운영인 것 같다. 평가가 끝남과 동시에 꿈과 끼를 키우는 새로운 활동모드로 돌입한다. 학년별 프로그램 계획을 수립하고 참여 학생을 선정하고 연습시간과 장소 등을 협의하여 일사천리로 진행시킨다. 학교에 따라 재능발표회 또는 교육실적보고회로 진행하기도 한다. 형식이야 어떠하든 결국 학생들의 재능과 끼를 발표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절차는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그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힘찬 격려의 박수와 환호성을 경험한다. 교사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본다면 얼마나 부러운 상황인지 모른다. 교사가 어렸을 때 재능발표회라는 것은 정해진 무대가 없었고, 아침 조회 때 학급별로 돌아가면서 리코더 연주를 하거나 이중창을 하거나 하는 정도로 매우 간소하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 남들 앞에서 꿈·끼 나누기를 해 본 기억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그래서였는지 리코더연주를 하는 그 순간에도 남들 앞에 서는 것이 쑥스러워 얼굴이 빨개지고 볼이 부어오르는 것처럼 화끈거려서 고개를 한참동안이나 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학생들은 자기표현이 많고 자신의 재능과 끼를 발휘하는데 매우 익숙한 것 같다. 방학 전과 2월 조정기를 이용한 꿈·끼 탐색주간 운영은 시간관리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교육정책을 고민하는 많은 분들이 이 자투리 시간을 가장 합리적이고 가치있는 시간으로 변모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했으리라. 학생들이 가장 빛나 보이고, 한 명 한 명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학생들은 자존감이 높고 타인을 배려하는데 자연스럽다. 남들과 어울려 소통하고 협동하며 하나의 동작을 만들고, 같은 음악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여 연습하는 동안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틀렸을 때 괜찮다고 격려해주고 박수쳐주는 4학년 아이들의 모습에서 작은 감동을 느낀다. 할 일로 머릿속이 가득차고 시간에 쫓겨 아득한 하루하루지만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12월은 참으로 행복한 달이다.

이정란 삼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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