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하지왕과 우사가 검바람재를 넘어 안평평원을 지나 대가야로 내려가고 있었다. 멀리서 말 한 마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먼저 대가야 어라성으로 보낸 호위무사 모추였다.

모추는 헐떡이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말에서 내려 하지왕에게 보고했다.

“마마, 큰일 났습니다. 어라성에 정변이 일어났습니다.”

“뭐라고, 정변이?”

“예, 박지가 신라와 손잡고 정변을 일으켜 전권을 장악했습니다.”

“신라와 손잡고? 그럼, 어마마마는 어떻게 되신 건가? 정말 위독하신 건가?”

“대비마마는 건강하게 잘 계신다는 소문입니다.”

“결국 박지 집사가 나를 잡기 위해 가짜 전갈을 보냈군.”

“그렇습니다.”

“도대체 박지가 정변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인가?”

“후누 장군과의 갈등 때문이라고 합니다.”

후누 장군은 가야 땅을 침범한 신라를 정벌하기 위해 호족들의 사병을 정규군에 편입시키는 사병혁파안을 추진했다. 그러자 사병을 가진 호족들이 반발했고, 특히 사병이 가장 많은 박지는 공공연하게 반대했다.

여가 전쟁 전 가야제국의 맹주인 금관가야의 영토는 낙동강 이동에 독로국과 미리미동국 2국, 낙동강 이서에 접도국, 고자미동국, 고순시국, 반로국, 낙노국, 미오야마국, 감로국, 주조마국, 안야국 등 12국, 그리고 소백산맥 너머 옛마한 땅에 설치한 가야 6국인 상기문, 하기문,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까지 합쳐 20여국에 이르렀다.

하지만 광개토태왕의 가야 침공으로 종발성과 금관성이 진멸된 뒤, 소백산맥 이서의 6국은 백제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낙동강 이동의 가야 땅인 미리미동국과 독로국은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12가야로 축소되었다.

최근 힘을 키운 신라 실성왕은 낙동강을 넘어 낙동강 이서의 땅인 성산가야를 침공해 신라에 영토에 편입시켰다.

이에 후누 장군은 박지 집사에게 말했다.

“아무리 가야 12국에 맹주가 없다지만 이건 참을 수 없습니다. 성산가야는 우리 대가야의 고깔과 같은 지역입니다. 신라를 쳐서 성산가야를 되찾아 와야 합니다.”

사병혁파안과 전쟁을 내세운 후누 장군에게 박지 집사가 말했다.

“우리 대가야가 백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었다고 또 전쟁이오? 전쟁만은 아니 되오!”

 

우리말 어원연구

오늘날 이름과 지명이 어디인지는 모두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추정된 지역을 소개하면 금관가야(김해), 독로국(동래), 미리미동국(밀양), 접도국(칠산), 고자미동국(고성), 고순시국(진주), 반로국(고령, 대가야), 낙노국(하동 악양), 미오야마국(합천 묘산), 감로국(김천 감문), 주조마국(김천 조마), 안야국(함안), 상기문(임실, 번암), 하기문(남원), 상다리(순천, 광양), 하다리(여수, 돌산), 사타(고흥), 모루(무안)로 비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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