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박지 집사는 호족의 사병을 대가야 중앙군에 편입시키고, 군을 강화한 뒤 신라에게 넘어간 성산가야를 치자는 후누 장군에게 반대했다. 그는 전쟁불가론을 근거를 대었다. 첫째 가야는 분열되어 있고, 신라는 통일되어 있다는 점. 둘째 지금은 여름이라 농번기이어서 군인을 징발할 수 없고 셋째 설사 신라를 쳐서 이기더라도 뒤에는 막강한 고구려가 버티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우직한 후누 장군은 신라토벌을 외치며 사병혁파안을 거세게 밀어부쳤다. 지방 호족들의 사병을 중앙군에서 징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지 집사가 후누 장군에게 말했다.

“후누 장군, 전에는 수경부인이 나를 부패분자로 몰더니 이젠 장군이 나의 병사들을 빼앗으려는 거요?”

“강군을 만들어 신라를 치기 위해선 사병혁파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한 번 뜻을 정하면 벽을 문이라고 박차고 나가는 우직한 후누 장군은 호족의 사병들을 정규군에 편입시키는 데 착수했다.

박지는 턱과 염소수염을 바르르 떨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어리석고 무식한 후누 이놈.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

손자병법을 주머니의 동전 주무르듯 하는 노회한 박지는 3계 차도살인계를 꺼냈다. 그는 신라의 실성왕과 내통해 성산가야의 주둔군 군주인 석달곤과 회동했다. 그리고 후누 장군이 박지의 사병을 해체하러 가기 전 날 밤, 박지는 석달곤을 불러 들였다. 석달곤은 순식간에 일천 기병대를 이끌고 아시고개를 넘어 어라궁과 후누 장군의 집을 습격했다. 신라군의 힘을 빌려 정변에 성공한 박지는 후누 장군을 뇌옥에 집어넣은 뒤, 군신지에 석달곤을 임명했다. 후누 장군 휘하의 무신계열인 내외관직인 축지 번지 검말 한기 주수 거수 등을 대거 숙청하고 그 자리에 친신라계 인물들로 채워 넣었다는 것이다.

추모의 정변 보고를 들은 하지왕과 우사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하지왕이 근심어린 얼굴로 우사에게 말했다.

“후누 장군은 갇혀 있고, 박지는 나를 노리고 있소. 오갈 데가 없는 우리는 앞으로 어찌하면 좋소?”

“우선 간밤에 묵은 구투야의 산채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약속이나 한 듯 말없이 말머리를 돌려 다시 검바람재로 향했다.

우사가 하지왕을 보며 말했다.

“마마, 지금은 400년 전 가야가 건국한 이래 가장 극심한 혼란의 때인 전국시대입니다. 금관가야가 무너진 뒤 가야제국들은 주변 강국들의 포위 속에 서로 싸우며 자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소?”

날은 저물고 검바람재의 고개는 높았다. 갑자기 뒤에서 추격해오는 병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우리말 어원연구

턱. 【S】tukhi(턱히), 【E】jaw. 참고로 턱해(頦), tukhi(턱히), 물수(水) mursu(무르수). 강상원 박사는 한자도 우리말 실담어(산스크리트어의 어원)에서 나왔다고 주장함.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