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칼, 쇠창, 쇠뇌, 쇠도끼로 무장한 한 떼의 철기병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모추는 하지왕과 우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석달곤의 병사들이 따라붙은 것 같습니다.”

석달곤은 성산가야 신라주둔군의 군주로 박지의 연통으로 일천의 기마병을 대가야로 이끌고 와 정변을 일으킨 장수였다. 박지는 앙앙불락하던 후누를 제거하고 대신 석달곤을 군신지로 삼은 뒤 하지왕의 체포를 명했다.

모추가 말했다.

“놈들의 추격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제가 막아 시간을 벌겠습니다. 그동안 우사선생은 왕을 모시고 빨리 관문을 넘어 구투야의 산채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왕은 자기만 갈 수 없으니 함께 가자고 했지만, 모추는 하지왕과 우사의 등을 떠밀었다.

석달곤은 하지왕의 모습을 발견하고 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목에 막대한 현상금이 붙은 놈들이다. 잡아랏!”

모추가 단기필마로 검바람재에서 쏜살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추격병과 마주친 모추는 백련강을 휘둘러 단칼에 셋을 추풍낙엽처럼 베어버렸다. 추격병들은 한꺼번에 활을 쏘고 쇠창으로 찌르며 모추에게 덤벼들었다. 홀로 고갯길을 막아선 모추는 날아오는 무수한 화살과 창날을 칼로 쳐내며 적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개미떼처럼 새카맣게 밀고 올라오는 석달곤의 병사들을 당할 수 없었다. 중산간 고갯길에서 백련강으로 베고 또 베어 피바람이 일어도 석달곤은 아귀처럼 달라붙었다.

일단 추격의 고삐를 늦췄다고 생각한 모추는 잽싸게 말머리를 돌려 다시 영마루로 올라갔다. 셋은 헐떡이며 검바람재 영마루까지 올라왔다.

도깨비바늘처럼 따라붙어 떨어지지 않은 석달곤이 환두대도를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멈춰랏! 도망쳐봤자 독안에 든 쥐다.”

셋이 영마루를 넘어가려는데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검바람재를 올라오고 있었다. 비화가야의 한기인 건길지가 병사를 이끌고 재의 남쪽에서 영마루를 향해 올라오는 중이었다. 석달곤은 이미 비화가야에 세작을 보내 협도인 영마루에서 하지왕을 잡자는 군호를 맞추어 놓았다. 고개의 영마루는 시원한 숲이 끊어지고 좌우로 바위절벽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어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우사가 양쪽에서 올라오고 있는 적군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진퇴유곡이로군.”

석달곤이 어린 하지왕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 이젠 뇌질왕가도 오늘로써 끝이야.”

하늘을 날아가거나 굴을 파서 도망가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한발자국도 갈 곳이 없었다. 양쪽에서 쫓아오는 병사들의 눈은 불에 비친 밤 짐승의 눈처럼 번들거렸다.

우사가 좁은 하늘을 보며 장탄식을 했다.

“아참, 대가야의 운이 여기까지인가!”

 

우리말 어원연구

아참. acham(아참). 남인도 및 스리랑카 사람들이 사용하는 타밀어. 【E】fear, fearful.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