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편 (25)윤명희 전 시의장과 미술교사

▲ 지난해 연말 전시회를 개최하기 전 어린이들을 상대로 그림공부를 시키고 있는 윤명희 전 울산시의회 의장. 윤 전 의장은 어린이들에게 그림 공부를 시키는 요즘이 의정활동을 했던 때 보다 더 보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문화의 불모지 울산에 화랑 열어
울산시의회 진출로 2002년 문닫아
시의원 시절에도 화가 지원에 앞장
은퇴후 치매 앓던 어머니 돌보며
예방·치료에 미술의 중요성 깨달아
노인·어린이 미술교육에 헌신중

지난해 말 울주군 범서읍 천상에 있는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의 제4회 그림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어린이들을 지도한 미술교사가 울산여성으로서는 한 때 가장 영화를 누렸던 윤명희 전 울산시의회 의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동안 울산시민들 중에는 윤 전 의장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3~4대 울산시의회 의원을 지내면서 4대 후반기에는 시의장을 역임했다. 그런데 시의회를 떠난 후 오랫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날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윤 전 의장이 그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오래되었다. 그는 울산에서 정식 화랑을 연 1세대다. 그가 화랑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울산에는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화랑이 몇 곳 있었지만 전시장이라고 부를 규모가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그가 신정동 울산여고 앞에 큰 건물을 짓고 3층 전체를 화랑으로 내어놓자 울산의 미술애호가들이 환성을 질렀다. 이전까지만 해도 울산에는 제대로 된 화랑이 없어 미술가들 대부분이 다방을 빌려 작품 전시를 했다.

윤 전 의장이 자신의 성을 따 ‘윤화랑’이라는 간판을 걸 때까지만 해도 울산사람들 중 그가 왜 돈벌이가 되지 않는 화랑을 열었을까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지만 경남여고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간호학을 전공했다. 그가 처음 미술에 발을 들여놓은 때가 1972년 울산에서 일요화가회가 창립 될 때다. 이 때 그는 이수원, 박흥대, 박동훈, 장승제 등 울산의 미술가들과 함께 이 모임에 참여해 울산의 미술 발전에 힘썼다. 이후에도 그림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87년 당시로서는 규모가 큰 빌딩을 지은 후 어머니와 협의해 화랑을 운영키로 결정했다.

외동딸인 그의 그늘에는 항상 어머니 박금련 여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 어머니가 말년에 오랫동안 치매로 고생하다가 돌아가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가 시의원 생활을 그만둔 후 일정기간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한 것도 어머니를 돌보느라고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좋아했지만 화랑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던 그는 화랑을 꾸밀 때도 울산 화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실내 장식은 물론이고 화랑을 꾸미는데 필요한 각종 자재를 선정하는데도 울산화가들이 도움을 주었다.

개관 당시 울산공고 미술교사로 있었던 박현수 선생은 학생들을 대거 데리고 와 자재를 운반하고 실내 장식을 하는데 못질까지 해 주면서 도왔다. 박 선생은 특히 당시 울산MBC에 근무하면서 문화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홍수진을 소개해 주어 이후 홍씨 역시 자주 윤화랑을 드나들면서 자문을 해주었다. 박 선생은 현재 옥동에 판화연구소를 차려 놓고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울산에 화랑이 열린다는 소문이 나자 학성여중 이수원, 학성고 정재환 선생을 포함 이창락·이달우·박흥대·홍맹곤·심수구씨가 자주 화랑을 찾아와 각종 자문을 해주면서 자신들의 일처럼 기뻐했다.

개관식 때 윤 전 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화랑 개관이 생소해 화랑의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10년 넘게 화랑을 운영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지켰다.

이 날 개관식에 참석한 울산 화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다른 화랑을 통해 거래하지 않고 반드시 ‘윤화랑’을 통해 거래하겠다는 약속으로 답례했다. 윤화랑 개관 후 울산에는 적지 않은 화랑들이 문을 열게 되는데 실제로 이날 개관식에 참석한 화가들은 윤화랑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이 약속을 지켰다.

윤화랑이 문을 닫은 것은 그가 시의회로 진출했던 2002년이다.

대신 그는 시의원 생활을 하는 동안 화가지원에 앞장서 2002년부터 전국 화가들을 대상으로 한 해 동안 우리나라 미술 발전에 기여한 화가와 조각가 한 명을 선정해 1000만원의 지원금을 주었다.

1회 박덕찬, 2회 김섭, 3회 서정국, 4회 도흥록, 5회 심수구, 6회 최석운, 7회 김준이 지원금을 받았다. 이중 서정국과 도흥록은 조각가고 나머지는 서양화가다. 7회부터는 격년제로 지원금을 주기로 하고 상금도 2000만원으로 올렸다. 그런데 이 무렵 선거관리위원회가 윤 전 의장에게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이 일이 사전 선거운동이 될 우려가 있다면서 기부금 중단을 요청하는 바람에 지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다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4~5년 전이다. 이때 유치원을 다녔던 외손녀가 자주 그림여행을 가 따라 나선 적이 있다. 이 때 그는 그림을 그리는 동심들을 보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보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그마한 화실을 열고 아동들을 상대로 그림을 가르쳤다. 그림에서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자유다. 그림의 주제와 물감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림에 이름을 쓰는 것도 자유롭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린이들 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그림 위에다 크게 써 놓아 그림보다 이름이 더 큰 그림들도 있다.

그는 그동안 어린이들과 함께 들꽃학습원, 고호 미술전, 태화강 설치 미술 등 울산은 물론이고 밀양과 산청 심지어 부산에서 열린 이중섭 그림 전시회도 참석하는 등 많은 곳을 다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어린이들에게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의외로 다른 그림에서 볼 수 없는 창의력이 많이 나타났다.

특히 그는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린 후 자신에게 가져오면 그림 전체에서 작은 것 하나 하나를 찾아내어 최대의 칭찬을 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어린이들에게 그림에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도 알았다.

어린이들의 경우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창의력과 자신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는 지금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어린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다 보니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어머니들이었다.

그는 야외에서 그림을 가르칠 때는 어린이들과 함께 온 어머니들에게도 팀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이를 나중에 어린이들에게 설명을 하도록 했다. 그림이 자유로운 만큼 설명도 다양하고 생각의 폭도 넓었다.

최근에는 그림 공부를 더 넓혀 매주 수목 이틀간 경로당을 찾아가 노인들에게도 그림을 가르친다. 그가 노인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치는 것은 치매로 돌아간 어머니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어머니의 치매를 간호하는 동안 치매 예방과 치료를 위해 그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머니를 돌보는 동안 치매로 말이 어눌해진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품고 있는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해 모녀가 소통할 수 있었다.

현재 그가 가르치는 할머니들은 대부분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내년 연말에는 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윤 전 의장이 이처럼 그림에 올인하는데 힘을 보태어 주는 사람이 있다. 울산여고를 졸업한 후 서울시립대학을 거쳐 독일로 가 미술공부를 하고 돌아온 딸 전혜윤씨는 현재 상북면 옛 궁근정초등학교에서 미술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윤 전 의장이 딸을 도와주는 형편이지만 얼마 있지 않으면 딸이 자신보다 더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가 윤화랑을 열었을 때 서울 인사동에 가 보니 당시만 해도 문화의 불모지로 알려졌던 울산에 화랑이 생겼다면서 기뻐하는 화가들이 많아 참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윤화랑을 운영하는 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울산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기뻤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과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지금이 그때 못잖게 더 보람되고 즐겁다는 생각을 합니다.”

울산시민들의 살림을 돌보았던 울산시의원에서 미술 교사로 변신한 윤명희 전 의장의 목소리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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