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셋은 석달곤의 계략에 말려들어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었다. 검바람재 영마루에서 대가야와 비화가야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마, 제가 혈로를 뚫겠습니다.”

모추가 추격병을 달고 온 책임을 통감한 듯 비장한 목소리로 하지왕에게 말했다. 그는 뜻을 굽혀서 기쁨을 얻기보다 죽음을 베개로 삼고 전쟁터를 누벼왔다.

“모추, 좌우 벽은 막혀 있고 적은 앞뒤로 이중 삼중으로 포위망을 치고 있다. 도대체 어디를 뚫는다는 거냐?”

“훈련이 잘 된 석달곤 철기군은 등에 철갑을 두른 악어와 같습니다. 아무리 칼질을 해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껍질이 무른 배를 찔러야 합니다.”

“어디가 무른 배란 말이냐?”

“남쪽의 건질지 군입니다. 비화가야는 상비군이 없고 건길지가 급히 부병대를 조직해 올라온 것으로 보입니다.”

부병대는 농사를 짓던 순박한 농민들을 끌어 모은 군대를 말한다. 보아하니 그들이 든 무기는 낫, 괭이, 죽창, 습사궁이고, 복장은 앞 선 몇몇을 제외하고는 밭일 할 때 입는 농투성이 옷 그대로였다. 한 삼년 쯤 앓아누웠다가 베잠방이만 걸친 채 끌려 나온 자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겹겹이 떼로 올라오고 있어 숫자는 북쪽보다 훨씬 더 많아 보여.”

“무예도 익히지 못한 오합지졸입니다. 제가 백련강으로 길을 헤치고 나갈 테니 마마와 우사 선생은 제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십시오.”

그러나 부병대도 만만치 않았다. 적이 셋밖에 없는 것을 알고 먼저 활을 쏘아대고 창을 꼬나들고 진격했다. 모추는 돌진해오는 부병대의 한가운데로 말을 달리며 백련강으로 좌우를 가르며 헤치고 나갔다. 모추가 휘두르는 백련강에 병사들이 어육처럼 베어져 나가 떨어졌다. 모추는 창을 빼앗아 적의 목을 산적처럼 꿰어 찼다. 그 뒤를 하지왕과 우사가 말을 타고 짓쳐달려 나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논밭에서 삽질과 호미질을 하던 순후한 농군들은 모추의 굉장한 위력에 놀라 무기를 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고 꽁무니를 빼며 달아났다. 뒤에서 건길지는 도망가는 자들의 목을 치며 독전을 해보지만 겁에 질린 병사들의 집단 탈주를 막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건길지 부병대의 뒤에서 쏜 화살과 불화살이 청천하늘에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산적두목 구투야의 녹림부대였다. 구투야는 망루에서 하지왕의 일행이 궁지에 몰린 것을 보고 부하들을 이끌고 원군으로 온 것이다. 앞뒤로 공격을 당한 농민 부병대들은 갈팡질팡하다 거미 알처럼 흩어졌다.

말을 탄 구투야가 고군분투하는 건질지를 향해 쇠그물을 던졌다.

 

우리말 어원연구

습사궁(習射弓). 실전용이 아니 연습용, 훈련용 활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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