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4)

▲ 왕궁정원인 따만사리에 있는 수영장과 같은 욕탕. 수영장이라 하면 너무 가볍고, 연못이라 하면 너무 무거운, 화려함과 향락을 겸비한 아름다운 장소이다.

인도네시아 이슬람문명의 대표 유산
따만사리는 정원 건축의 화려함으로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과 비교될 정도
복잡고 소란한 새시장 골목서 출발
문짝도 없는 폐허수준의 입구 지나
긴 지하터널 끝에 마침내 만나는
거대한 수조는 은밀한 향락의 장소
50년도 못버틴 술탄의 향락을 보며
휴식과 수신을 위한 소박한 공간
조선 왕의 정원 창덕궁 후원 떠올려

인도네시아의 족자카르타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또 하나의 경이로운 유적이 있다. 바로 따만사리(Taman Sari)라는 왕궁 정원의 유적이다. 프람바난이 힌두문명을, 보로부두르가 불교문명을 대표한다면 따만사리는 이슬람문명의 유산으로서 종교 문명사적 의의를 갖는다. 이슬람 왕조의 화려한 삶을 생생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조원과 건축적 장치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히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과 정원에 비교될만하다.

이 유적은 18세기 이 지역을 다스렸던 술탄(이슬람 군주)의 왕궁유적에 포함된다. 내란을 통해 족자카르타의 지배권을 획득했던 술탄은 아방궁과 같은 궁궐을 지어 사치와 향락을 누리려했던 모양이다. 따만사리는 왕궁의 후원으로서 화원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의미한다. 또는 물의 궁전이라고도 부르는데 인공호수와 수조를 기반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본래는 거대한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4개의 구역을 조성하고, 섬과 수조, 조경으로 만든 18곳의 정원과 파빌리온을 건설했다. 여기에 모스크와 기도실, 욕탕을 포함하는 58개소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구역들이 지하터널을 통해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왕궁에서 담장을 겹겹이 둘러 은밀한 영역을 만드는 사례는 흔히 나타나지만 이처럼 지하터널로 은밀하게 드나드는 예는 보기 어렵다. 침입자에 대한 방어적 수단이거나 감추고 싶은 행위들을 위한 장치였음에 분명하다. 물론 창건 당시의 거대하고 화려했던 모습이 온전하게 보전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구역은 거의 사라지고 중앙에 있었던 욕탕구역만이 유일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작은 유적만으로도 술탄시대의 화려했던 정원의 모습과 그들의 삶을 유추하기에 모자라지 않는다.

따만사리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빠사르응아슴이라는 새 시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은 소설이나 영화의 서두부에 해당하며 따만사리는 클라이막스이기 때문이다. 귀에서 공명이 일어날 정도로 시끄럽고 복잡한 새 시장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치 폐허처럼 입구를 만난다는 것부터 당황스럽다. 외장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난 폐허 건물에 문짝도 없는 입구는 이곳이 정녕 왕궁유적인가를 의심스럽게 한다.

건물 안은 더 가관이다. 뚜껑은 날아가고 구조는 허물어져 벽체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폐허수준의 공간이 나타난다. 그 폐허건물은 마치 마법처럼 지하도로 연결된다. 뾰족한 아치 형상의 천장으로 이어진 긴 터널에는 어디선가 강렬한 빛줄기가 떨어진다. 올려다보니 일정한 간격으로 천창이 설치되어 있다. 도대체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나타날 것인가?

마침내 터널의 끝에 신비스런 빛줄기를 담은 원통형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그 원통 안에는 계단 하나가 강렬한 조명을 받으며 나타난다. 계단 하나가 이토록 가슴을 뛰게 한 건축물은 없었으리라. 그것은 위로 오르는 통로가 아니라 계단 형상의 조각 예술품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네 방향에서 출발한 계단이 계단참에 모이고 다시 한 방향으로 오르는 독특한 형상이다.

2층에 오르면 원통형 아트리움을 돌아가는 원형 통로로 이어지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은밀한 공간이 달려있다. 두꺼운 벽과 음침한 조명. 은폐된 입구, 내부 장식이 퇴락하여 유추하기는 어렵지만 몰래 숨어서 해야 할 행태를 담았던 것이 분명하다. 군주의 명상이나 기도실이었을까? 아니면 밀회를 위한 공간이었을까?

원통형 공간을 빠져나오자 길은 높은 담장으로 길게 유도하며 새로운 입구에 도달하게 한다. 거기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대문이 새로운 공간을 암시한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거대한 수조, 그것은 수영장과 같은 욕탕이다. 수영장이라 하면 너무 가볍고, 연못이라 하면 너무 무거운, 화려함과 향락을 겸비한 아름다운 장소이다. 사방은 높은 벽으로 둘러쳐 은밀함을 만들고, 정자와 화분으로 고급스러움을 표현했다.

물로 향하는 계단은 슬며시 물속으로 사라진다. 중앙에 있는 정자형 전망대는 이 공간을 장식한 아름다운 파사드이자 앞 뒤의 수조를 나누고 조망할 수 있는 기능을 담는다. 오로지 왕만이 벌거벗은 여인을 엿볼 수 있는 장소, 관음증은 권력이며 음탕한 향락이다. 옛 술탄들은 이곳에 올라 물장구치는 시녀를 바라보다가 손수건을 던져 여자를 선택했다고 한다. 전망대에 부속된 작은 방들은 선택한 여자와 밤을 보낼 수 있는 침실과 여자가 치장하던 방도 있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술탄의 향락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812년 영국 침략시기에 왕궁 대부분 시설이 파괴되고 말았다. 채 50년도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1887년 지진으로 남아있던 건물마저 무너지고 호수와 수조의 물이 고갈되어 버렸다. 탐욕스러운 군주가 아방궁을 지을 수는 있으나 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백성들의 몫이다.

조선시대 왕의 정원, 창덕궁 후원을 생각한다. 그곳은 휴식과 수신의 공간이다. 높은 담장으로 가리지도 않았고 땅을 파고 몰래 감추어 두지도 않고, 음탕하지도 않다. 인공적이라고 해봐야 네모난 연못에 소박한 정차 하나면 족하다. 나머지는 자연으로 에워싸인다. 아니 자연 속에 스며들어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후원 중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옥류천 일곽도 향락을 즐기는 장치와는 거리가 멀다. 친경을 위한 논바닥 안에 세워진 초가지붕의 정자, 노는 것도 백성을 생각하며 즐기라는 경계이다. 무릇 다스리는 자는 향락을 멀리해야 하느니.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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