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구투야가 주안상을 가져온 여자를 소개하며 말했다.

“저와 같이 사는 집사람입니다.”

“저는 달기라고 하옵니다.”

참빗으로 빗질한 가르마 머리에 봉잠을 꽂은 달기는 얼굴에 끼와 속세의 냄새가 묻어 있어 첫눈에도 이력이 녹록지 않게 보였다.

달기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해요.”

우사가 말했다.

“갑작스레 찾아와 저희들이 실례가 많습니다.”

달기가 술이 가득 담긴 굽다리 긴목 항아리를 들고 우사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천만에요. 언제 저잣거리에 목이 매달릴지 모르는 녹림부대원을 찾아주시니 저희들이 고마울 따름이죠.”

그녀의 색기 어린 자태와 무람없이 활달한 말은 주석의 분위기를 돋웠다.

어린 소년이 하지왕이라는 걸 알게 된 그녀는 놀라서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왕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왕림하시니 큰 광영입니다.”

“무슨 말씀을. 구투야 두령과 녹림부대가 아니었다면 저희들 생명이 위태로웠습니다.”

▲ 그림 이상열

“대가야를 다스리는 약관의 왕이 영명하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산채엔 어인 일이신지요?”

“본래 태사령 우사선생과 함께 여행하던 중, 대가야 어라궁에서 정변이 일어나, 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쫓기고 있는데 잠시 구투야 두령에게 몸을 의탁하러 왔습니다.”

“저도 소식은 들었습니다. 이번에 신라장군과 손잡고 정변을 일으킨 자가 박지 집사라지요.”

“그렇습니다. 이곳이 소식이 참 빠르군요.”

달기가 말했다.

“검바람재는 금관가야, 아라가야, 비화가야, 성산가야, 삽라국이 걸쳐 있는 길목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각종 소문이 이 고개를 통해 넘나드는 곳이기도 하지요. 저는 검바람재 초입에 주막을 하던 주모였습니다.”

달기는 옛날 장유화상이 은거하던 옥천사에서 주방일을 하던 행자였다. 하지만 고구려의 침입으로 승병과 함께 대고구려 항쟁을 벌이던 절은 불타고 가족들은 전화에 목숨을 잃었다. 이후 달기는 검바람재 고개 밑에 주막을 열었다.

“깊은 산골에 주모로 홀로 일하다보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험한 일을 당할 때가 많죠. 그날도 험상궂게 생긴 사내 하나가 술주정을 하며 제게 지분거리더군요.”

우리말 어원연구

빗질하다. 【S】visiya(비시야), 【E】comb. ‘빗질하다’의 고어, 사투리는 ‘비스다’이다. 산스크리트어 ‘비시야’와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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