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목표를 향한 속도보다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더 중요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가 필요

▲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남긴 말이다. 가우디는 19세기 말 고전주의 건축풍을 벗어나 건조한 기하학만이 아닌 하늘·구름·식물 등 자연을 관찰해 곡선의 중요성을 건축에 반영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구엘공원, 카사밀라 등 그가 건축한 7개 작품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특히 성가족 성당은 미완성 상태로 등재될 만큼 그 작품의 우수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본래 ‘직선’은 점과 점을 가장 빠르고 짧게 연결하는 단 한 개의 선으로서 속도와 효율을 지향한다. 반면 곡선은 다양한 형태로 연결할 수 있는 자연의 선으로서 느림과 다양성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잠시 생각해 본다. 건축가 가우디가 말한 이 직선과 곡선을 우리 인생살이에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또 나랏일에는 어떻게?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어느 한 쪽만 적용하기보다는 사안의 성격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양자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나랏일을 보자. 정부나 자치단체가 시행하는 각종 정책은 한 번 발표하면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물론 정책결정과정에서는 이해관계인들의 충분한 의견수렴과 면밀한 검토를 거쳐야 하고, 집행과정에서 사유재산권을 불가피하게 침해할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KTX 노선 천성산 통과문제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일부 반대여론에 밀려 사업의 시행을 지체함으로써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직선과 같은 강력한 추진력으로 시행해야 국민의 신뢰 확보는 물론 불필요한 부담을 막을 수 있다.

한편 때로는 돌아가야 할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들의 ‘공약’이다. 공약은 말 그대로 후보자가 당선되었을 때 시행하겠다는 정책적 성격의 약속이다. 하지만 취임해서 책임성을 가지고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예산이나 제도적인 문제 등으로 실현이 어려운 것들이 있다. 이 경우 본인의 정치적 부담을 우선 덜기 위해서 무리하게 밀고 나가는 사례가 가끔 있는데, 솔직하게 해당 공약의 시행상 어려움을 밝히고 수정·보완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국가나 국민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다음은 개인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초지일관(初志一貫)’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 뜻을 한 번 세우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때로는 많은 장애물을 만나고 시련의 고통도 따르겠지만 그 만큼 성숙해지면서 목표지점으로 다가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인생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가려고 하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 사람간의 ‘신의’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필요할 때는 그럴 수 없이 친한 척 하며 이용하다가 가치가 떨어지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적합치도 않은 말을 핑계 삼아 신의를 저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살면서 때로는 둥글게 처세해야 할 때도 있다. 특히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의 일원일 때는 더욱 그렇다. 의사결정을 할 때 자기 고집만 세워서 관철하려는 아집을 가진 이들이 많고, 정말 지양해야 할 것은 자칭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데 자기 의견이 항상 최선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형식적으로만 들어 임의로 결정하고, 토의 과정에서 자기 의견이 분명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 못난 사람들도 있다. 박노해 시인은 “아름다운 길에 직선은 없다…굽이굽이 돌아가기에 깊고 멀리 가는 강물이다”고 했다. 자신의 주장을 굽힐 줄도 알고 더불어 사는 삶이 지혜로운 인생이 될 것이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지나온 길을 반추해 보고 앞으로는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생각해 볼 때다. 직선은 직선대로 곡선은 곡선대로 나름의 특성이 있으므로 사안에 따라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슬기로운 국정과 인생의 여정을 생각해 본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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