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삼일여자고등학교 교사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우연히 낡은 노트 두권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한권은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에 다시 복학한 후의, 또 한권은 교사로서 부임 후 첫 1년 동안의 일상들을 적은 일기 같기도 하고 습작 같기도 한. 새삼스러웠다. 동시에 지난날들도 함께 되살아났다. 이제는 내게서 사라져버린 낡은 희망들도 거기에 묻어있고, 낡은 열정도 여전히 숨 쉬고 있었고, 어쩐지 아련해지는 기분과 함께 눈물이 찔끔났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랬다. 그 시절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책 한권을 쓰리라는. 하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거짓말처럼 훌쩍 가버렸다.

다들 사는 게 그래, 꿈도 사라지고, 떠나온 길은 멀고, 그렇게 청춘도 떠나버린 줄 알았다. 본 페이지는 지나가고 별책 부록 같은 삶에 다다른 것 같았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기에는 너무 늦은 세월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2015년 봄, 나는 독서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된 책 쓰기 동아리의 지도교사를 우연히 맡게 되었다. 막막했다. 무엇을 책에 담아야 하지? 동아리명은 뭐로 하지 등등. 그러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르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항상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던, 그러나 늘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던 순수한 영혼을 간직했던 윤동주 시인. 그의 대표작인 ‘별 헤는 밤’을 동아리명으로 정하기로 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고, 몰랐던 자신을 다시 발견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렇게 꿈 많은 소녀들의 책 쓰기 여행이 시작되었고, 나도 기꺼이 그 여행에 동참했다, 계획을 짜며 설레고, 본격적인 글쓰기 여행을 나서며 설레고,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잠시 일상을 벗어나서 설레고, 또 잠시나마 꿈을 꿀 수 있어 설렌다. 그리고 그러한 설렘들이 모여 책이 되었다.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낭랑소녀들의 꿈을 담은 이야기, 그 첫 번째 <책 속에 나를 넣어 두었다> 두 해 째 <사랑을 담다> 세 번째 <모든 그리움의 순간, 우리는 책을 쓴다>가 완성되었다. 아름다운 책, 세권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쩌면 그 책들은 우리가 우리에게 준 멋진 선물이 아닐까? 오랜 시간이 지나 책장에 꽂힌 그 책들을 우연히 꺼내게 될 때 그 책은 아마도 새로운 설렘으로, 조그만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리라. 그리고 책 쓰기 여행 동안 사실은 내가 더 설레는 마음이었다. 초고를 받고 수정을 하면서, 또 그럴듯하게 편집을 하면서 스스로도 놀라움을 면치 못했다. 이렇게 멋진 책이 만들어질 줄이야. 그리고 나는 다시 꿈꾸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책 한권을 쓰리라.

아 우린 얼마나 애(愛)를 쓰며 살았던가? 얼마나 애를 태우고 또 얼마나 애를 끓이며 살아 봤던가? 다시 한 해가 시작 되었다. 찬바람이 불어댄다. 바람에서 세월 냄새가 묻어난다. 올해는, 아니 앞으로 날들 애(愛)를 쓰고, 애(愛)도 태우고, 애(愛)를 열심히 끓이고 싶다. 글쓰기란 내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빛나는 청춘이다.

김경식 삼일여자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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