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악의 미세먼지에 접은 소백산 산행
인근 온천에 들러 몸을 녹이며
왜 그리 가고 싶었을까? 스스로 묻는다

유년기 즐거운 추억 회상과 함께
인생의 큰 관문 앞둔 고교생 아들에게
한겨울 눈 쌓인 소백산을 오르며
세파 견디는 연습 기대한건 아닐까?

살면서 강한 충동에 사로잡힐 때면
잠시 주위에 동조말고 자신을 응시해
평소 깨닫지 못하던 내면을 떠올려봐야
충동에 끌려다니면 원치않는 삶 살수도

연말을 두 달 앞두고 눈 덮인 소백산에 마음이 꽂혔다. 평소 동네 염포산은 자주 가지만 추운 겨울에 높은 산에 오른 것은 까마득히 오래전이다. 소백산도 가본 적 없다. 그저 하얀 눈을 한껏 밟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서 찾아보니 소백산이 눈에 띄었다. 수북이 쌓인 눈과 소박한 풍경이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은 산 이름이다. 단순한 발상에 아내가 호응하면서 상상은 환상적인 눈 풍경으로 발전하더니 이내 구체적 연말 계획이 되었다. 고등학생 아들의 방학 날짜에 맞춰 출발해서 첫 날에는 풍기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이왕이면 겨울 밤 별도 보고 싶다는 욕심에 소백산의 대피소도 어렵게 예약했다. 이만하면 힘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멋진 여행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알아보니 겨울 산행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늦가을 신불산의 억새평원은 가볍게 올랐지만 높이가 비슷한 소백산의 쌓인 눈과 강추위는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철저히 준비하면 되겠지 뭐.’ 이런 생각으로 걱정을 달래며 등산 장비를 챙기다보니 한이 없다. 오래된 방수등산화와 아이젠을 꺼내고 스틱, 모자, 마스크, 장갑, 등산양말, 스패츠를 준비했다. 산에서 두어 번 식사하려고 일회용 발열 도시락을 샀는데 생각보다 부피가 커서 결국 버너와 코펠을 장만했다. ‘겨울 산 한 번 가려고 이렇게까지 준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앞으로는 자주 가게 될 거야.’하고 가당찮은 이유를 댔다. 소파에 앉아 TV 속 겨울 산 절경을 감상하는 것과 실제 등산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며 조금씩 걱정되었지만 한번 시작된 계획은 멈출 수 없었다. 마침(?) 12월 중순에 나도 아들도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운을 탓하며 예약을 취소할까 했는데 연말 즈음엔 거의 회복되었다.

드디어 출발일, 기대 반 걱정 반 풍기로 향했다. 힘들거나 위험하면 중간에 돌아오자고 말하고 나니 적이 안심되었다. 그런데 오후부터 하늘이 심상찮더니 미세먼지가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다음날 아침 일기예보를 보니 초미세먼지가 매우 위험 수준이란다. 게다가 안개도 잔뜩 끼어서 눈앞의 소백산은 마치 옛날 흑백 TV 화면처럼 뿌옇다. 두 달간 준비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그렇다고 미세먼지를 온종일 한껏 들이마실 수는 없었다. 천재지변, 아니 인재를 탓하며 등산을 포기했다. 실망감을 달래며 풍기의 온천에 들렸다.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니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편안해졌다. ‘그래, 추운 날 힘든 산행보다는 이렇게 몸을 녹이는 것이 낫지. 그런데 눈 덮인 소백산엔 왜 그리 가고 싶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강한 충동이나 욕망에 사로잡히곤 하지만 그 이유를 묻는 일은 드물다. 누군가 갑자기 좋아질 때, 꼭 하고 싶은 일이나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길 때, 사소한 일에 분개할 때에도 그냥 당연시한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것이다. 이를 방치하다간 원치 않는 삶을 살아갈 위험이 있다. 물론 자신의 감정을 일일이 따질 필요는 없지만 유난히 마음을 흔든다면 다시 돌아봐야 한다. 이는 무의식 접근처럼 어렵지 않다. 그저 잠시 멈추어서 주위에 동조하거나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응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평소 깨닫지 못하던 내면의 모습이 드러나곤 한다. 한겨울 흰 눈을 떠올리며 나의 경험을 돌아보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스쳐간다. 내 마음 들여다보기 연습장을 조금 펼쳐 본다.

울산의 겨울은 서울보다 5℃ 정도 따뜻하다. 살기 좋은 기후지만 어릴 적 서울의 함박눈은 잊을 수 없다. 울산에도 간혹 귀한 눈이 내리지만 환호도 잠시, 스르르 녹아버린다. 그 때는 추위도 반가웠다. 40여 년 전 지금의 잠실 롯데월드 자리는 논밭의 물이 얼어 스케이트장으로 인기였다. 몹시 추운 겨울날 아침 아랫목에서 꼼짝 않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 한파 때문에 등교하지 말라는 뉴스가 나오면 뛸 듯이 기뻐서 추운 줄도 몰랐다. 울산 생활 20년에 문득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이 떠올랐을까?

작년 우리나라는 격변의 한 해였다. 나라가 불안한 가운데 인간의 욕망과 위선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하얀 눈으로 깨끗이 지우고 새로 태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고등학생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루 종일 실내에 앉아서 눈앞의 글자를 파고들어야 되고, 짬을 내더라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래서 연말 하루라도 깨끗한 눈으로 덮인 먼 산을 보며 쉬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왜 굳이 매서운 겨울바람 부는 소백산을 골랐을까? 아! 갑자기 나도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 떠오른다. 세상은 아들에게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풀도록 권할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저마다 젊은이를 위한 세상을 만든다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부모의 걱정과 불안은 자녀가 어떻게든 냉엄한 현실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나는 아들이 풀어져 쉬기보다는 한 겨울 소백산에서 거친 세파에 견디는 연습하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일어서려는 아들에게 온탕에 조금 더 몸을 담그자고 권해본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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