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박물관, 도산성 전투 420주년 맞아 31일 행사

▲ 도산성 전투는 정유년 1597년 12월에 일어났다. 당시 도산성 전투의 모습을 왜장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회고를 통해 그린 병풍 그림.
올 1월 하순은 음력 기준 정유년 12월로 울산 도산성 전투가 벌어진 지 7주갑(420년)을 맞이하는 달이다. 정유재란 최대 격전지였던 도산성은 왜군에 맞선 울산 백성들의 항전과 아픔을 간직한 곳으로 절대 잊어서는 안될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다.

도산성은 조선 후기에 증성(甑城)으로 불렸으며, 일제강점기부터는 학성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또 현재 울산시 문화재자료 제7호 ‘울산 왜성’으로 지정돼 있다.

도산성 전투는 정유년 1597년(선조 30)에 일어났다. 당시 왜군은 태화강가 필봉(筆峰)의 봉우리를 깎고, 울산읍성의 돌을 헐어 옮겨와 왜성을 쌓았다. 이를 조선에서는 도산(島山), 도산성(島山城)이라 불렀다. 이곳에서 조명(朝明) 연합군과 왜군 간에 두 차례 큰 전투가 벌어졌다.

1차 도산성 공방전은 1597년 12월22일부터 1598년 1월4일까지 전개됐다. 조선의 도원수 권율·경상좌병사 고언백·경상우병사 정기룡, 명나라 경리 양호·제독 마귀는 도산성의 왜군을 공격했다.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한 왜군은 성에 포위되면서 식수가 모자라자 말의 목을 찔러 피를 마시고 소변을 받아 마시기도 했다. 종이와 벽의 흙도 끓여 먹었으며, 성 밖으로 나와 시체를 뒤져 양식을 찾아 먹기도 했다.

치열했던 전쟁의 참상은 후에 이 전투에 참전했던 왜장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회고에 의해 그림(병풍)으로 그려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2차 도산성 전투는 1598년 9월에 일어났다. 조명 연합군은 두 차례에 걸쳐 울산왜성을 공격했지만 왜군이 철저하게 방어에만 주력해 결국 성을 함락시키진 못했다. 그러나 왜군 또한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왜군에게 철수 명령이 내려지고, 11월18일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왜성을 불태우고 부산으로 퇴각한다.

도산성 전투에서 연합군은 비록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1차 전투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도주하는 등 왜군의 실질적인 패배로 이어져 전쟁 종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에 울산대곡박물관은 오는 31일 울산 도산성 전투와 더불어 임진왜란~정유재란에 이르는 울산의 역사를 알아보는 ‘정유년(1597) 12월, 울산 도산성 전투의 기억’ 답사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이번 행사는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김강식 한국해양대 교수가 정유재란과 울산 도산성 전투의 전개과정 및 그 의미에 대한 강의를, 2부는 대곡박물관 인근에 위치한 조선시대 관방유적인 소산 봉수대를 답사한다. 참가자는 선착순 30명을 모집하며, 22일부터 대곡박물관 누리집(dgmuseum.ulsan.go.kr)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이우사기자 woos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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