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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인물로 읽는 울산유사
[인물로 읽는 울산유사(283)]이 교장, 울산 용잠초 교사로 근무할때 차녀 정미씨 낳아문화예술편 (27)이재만 교장과 이정미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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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1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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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경 교사가 80년대 중반 친구 이연숙씨와 연숙씨의 동생 정미와 함께 하회마을을 여행하면서 양진당 종부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종부를 중심으로 왼편이 연숙씨고 오른편이 김혜경 교사 그리고 이 전 재판관(오른쪽 두번째 뒷줄)은 종부와 김혜경 교사 뒤에 안경을 끼고 앉아 있다.

1920년 울산서 태어난 이 교장
대부분의 교사 생활 울산서 보내
검소하고 도덕적인 모습 존경받아
차녀 이정미 전 재판관도 울산 출생
대현초-학성여중 거쳐 마산으로
“탄핵 선고하는 모습, 부친 닮아”


이재만 교장은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딸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때문에 유명 인물이 됐다. 이 전 재판관은 지난 해 3월10일 헌재소장 권한대행 신분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청구인용을 선고해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이 전 재판관은 이에 앞서 2014년에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했다. 이 전 재판관이 이처럼 유명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족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가 울산사람으로 알려진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그가 울산사람이라는 주장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가 이런 의문을 받은 것은 고등학교를 마산에서 졸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이 전 재판관이 울산에서 태어나지 않고 그의 아버지가 교사로 울산에서 근무할 때 울산에 잠시 머물면서 학교를 다녔을 뿐이다” 고 말했다.

이 전 재판관은 울산에서 태어났고 울산에서 대현초등학교와 학성여중을 나온 뒤 대학진학을 위해 고등학교만 마산으로 가 마산여고를 졸업했다.

이 교장은 1920년 울산군 대현면 부곡리에서 태어나 46년 6개월 동안 교사생활을 했다. 그는 교사 초기 잠시 창녕의 남지심상소학교에서 근무를 했을 뿐 교사 생활 대부분을 울산에서 보내었다. 그는 1944년 병영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대현초, 온양초, 용잠초, 삼호초, 덕신초, 학성초, 여천초, 대현초 등 무려 15개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이 교장은 백면서생이었다. 이런 그의 성격은 그가 정년퇴직한 후 1998년 펴낸 자서전 <春溪慢步>에 잘 나타나고 있다. 춘계는 그의 호다.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중간 중간에 칼라 사진도 넣고 호화롭게 엮었다. 이 책은 1부 가계, 2부 내가 걸어온 길, 3부 해외여행, 4부 춘계철학 단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책 안에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이 전 재판관의 글은 한줄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는 용잠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면서 ‘차녀 정미가 태어났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다만 자서전에는 ‘자녀손일람표’가 있는데 이 표를 보면 이 교장은 태건, 창건, 형건과 함께 연숙, 정미 딸 둘을 두었다. 표 속에는 사위 이름도 있는데 정미 남편은 신혁승씨이고 둘 사이에 딸 지은이 있다. 신씨는 대학 교수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퇴임했다.

이 교장에게 용암초등학교가 중요한 것은 이 학교에서 교장이 되었고 첫째 딸 연숙을 얻었기 때문이다. 첫 딸은 이 책에서 두 번 언급된다. 한번은 연숙을 낳았을 때 반가워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퇴임 후 해외여행을 하면서 “장녀 연숙이 다녔던 동경대학도 가보았다”고만 적어 놓고 있다.

그가 자서전을 썼던 1998년에는 큰 딸 연숙이 부산에서 교수로 있었고 둘째 딸 정미는 이미 서울에서 판사로 활동을 하고 있을 때다. 따라서 딸 자랑을 할만도 한데 이 글 외에 딸에 대한 기록은 한마디도 없다.

반면 자신의 교사생활에 대해서는 부임한 날짜와 교사들의 이름, 심지어 제자들의 이름까지 모두 기억해내어 시시콜콜 다 써놓고 있다.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가난하게 살았는데 특히 용암초등학교에 있을 때 더욱 힘들었다. 자서전에는 ‘교직생활과 가계’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글 속에는 교직생활을 할 때 그가 얼마나 가난하게 생활했는지가 잘 그려져 있다. “교직생활 중 경제적 물질적 계산을 하는 것은 점잖치 못한 일이지만 교사로 있을 때 나의 경제생활은 ‘거지생활’ 그 자체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이 있었지만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도 이를 처분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부모 재산을 처분한 돈을 쓴다는 것은 죄를 짓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재산에 손을 댈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어 “나는 지금도 대꼬바리(곰방대)로 담배를 피운다. 정년퇴임 전까지는 조금이라도 돈을 아껴보려고 곰방대에 풍년초를 넣어 담배를 피웠는데 이제는 완전히 습관이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용암초등학교 사택에서 이 교장과 함께 교사 생활을 하면서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노용택(88) 화가는 “당시 이 교장의 집안 형편을 보면 부친이 물려 준 재산이 있고 형과 동생 둘 모두가 양자로 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아도 되었는데 돈을 아끼려고 부인도 사택으로 데려 오지 않고 혼자 사택에서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면도 노씨는 “이 교장이 경제적으로는 어렵게 살았지만 검소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해 교사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교장에 대한 이런 칭찬은 이 교장이 용잠초등 교사로 있을 때 제자였던 박형구(80) 전 울산MBC 보도국장도 비슷하다. 박 전 국장은 당시 이 교장을 회상하면서 “이 교장은 말이 없었지만 풍채에서 풍기는 근엄함 때문에 교사들과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면서 “나중에 이정미 재판관이 박 대통령 탄핵을 선고하는 모습이 흡사 부친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이 교장은 가난했지만 낭만적인 생활을 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했다. 시 짓기를 생활화 했던 그는 여천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는 ‘가꾸는 마음’이라는 노래를 작사·작곡해 어린이들에게 가르쳤다. 한시를 좋아했던 그는 퇴임 후에는 7언시를 써 범서읍 망성리에 있는 완계정(玩溪亭)에 걸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이 교장이 술을 좋아하게 된 이유다. 자서전에는 “1968년 농남초등학교 선생일 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사택에 램프 등을 걸어놓고 살았는데 이때부터 나의 생활 리듬이 깨어지고 말았다. 장남과 차남이 대학을 다닐 때인데 두 아이의 등록금과 매월 하숙비를 감당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래서 나도 모르게 술을 마시게 되었다. 저녁만 되면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교장이 이처럼 검소한 생활을 하다 보니 가족들의 고생이 컸다. 이 교장은 자서전에서 여러 번 “내가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집 사람이 너무 고생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교장 부인 김성희 여사는 김태호 전 국회의원의 6촌 누나로 시집을 오기전만 해도 부잣집에서 살았다. 그는 1944년 이 교장에게 시집을 왔다.

자녀들도 고생을 많이 했다. 이 전 재판관이 지난해 11월 울산대학교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이 때 학성여중 시절을 회상하면서 “당시는 집이 가난해 책가방은 물론이고 필통도 없이 한 시간이나 되는 학교를 걸어 다니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고교생활을 마산에서 했기 때문에 이 전 재판관을 기억하는 울산 친구들이 많지 않다. 그런데 동구 현대청운고등학교 김혜경 교사는 이 재판관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김 교사는 이 전 재판관의 언니 연숙씨가 대학 동기이고 그의 동생 수경씨는 이 전 재판관과 학성여중 동기다.

김씨는 이 전 재판관이 학성여중 졸업 후 마산여고로 간 것이 순전히 대학 진학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 전 재판관이 학성여중을 졸업할 당시 울산은 평준화 지역이 되어 뚜렷이 성적이 좋은 여고가 없었다. 따라서 이 전 재판관은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시험을 쳐 당시 경남의 명문 마산여고로 진학했다.

이 전 재판관은 마산여고를 졸업할 때 인문계열에서 1등을 했다. 이 전 재판관이 마산여고를 졸업한 후 고려 법대로 진학했을 때 그의 친구 수경씨는 울산여고를 졸업한 후 서울 약대로 진학, 지금은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김혜경 교사는 부산대 국문과로 진학했는데 이곳에서 이 재판관의 언니 연숙씨를 만났다. 연숙씨는 부산대 졸업 후 일본으로 가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은 동의대 교수로 있다. 김씨는 “울산에는 동생 정미가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언니 연숙 역시 동생 못잖게 훌륭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운다.

김씨가 이 전 재판관을 가까이서 지켜 본 것은 80년대 중반 하회마을을 여행했을 때다. 이 때 김씨는 이 재판관의 언니 연숙씨와 1박 2일 일정으로 하회 마을을 다녀온 적이 있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그런데 이 때 사법고시를 막 패스한 이 전 재판관이 언니를 따라 여행에 동참했다. 김씨는 당시 여행을 회상하면서 “그 때만 해도 이 전 재판관이 나중에 통합진보당 해산과 박근혜 대통령 파면 등 우리 역사의 전환점을 가져 올 재판을 할 재판관이 될 줄은 몰랐다”면서 “그때부터 이 전 재판관이 말은 없었지만 매사를 냉철하게 보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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