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정지범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복합재난연구센터장

▲ 복합재난관리센터장을 맡고 있는 정지범 UNIST교수는 “안전을 위해서는 강력한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무엇을 만드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위험물질 제조지역 주민에 공개해야
안전과 규제, 같이 갈 수밖에 없어
자본의 논리로 규제 어려운것이 문제
사고 발생하면 ‘안전불감증’ 운운
개인 잘못인양 결론보단 원인 찾아야
주민주도형 안전관리기구 운영 필요
독립된 사고조사위원회 구성도 절실

울산에도 근래 들어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의 대규모 재해가 잇따르고 있다. 2014년 폭설로 인한 마우나리조트 체육관과 북구지역 공장 붕괴, 2016년 태풍 ‘차바’로 인한 수해, 2016~17년 울산·경주·포항으로 이어진 지진…. 지난 몇 십 년간 자연재해가 없는 도시라고 자랑삼았으나 점점 불안한 도시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울산은 노후된 석유화학단지를 안고 있으며 지척에 10여기의 원자력발전소도 자리하고 있다. 울산의 재난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을까. 복합재난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정지범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를 만나 우리나라와 울산시의 재난관리 실태와 문제점을 살펴본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는 물론 울산에서도 재난이 잦다. 갑작스럽게 재난이 증가한 것인가.

“우리나라가 재난이 많은 나라는 아니다.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도 틀림없다. 우리나라 사망자 수가 1년에 28만명 정도이다. 그 중 사고사는 10% 정도인데 교통사고 사망자는 4500명가량이다. 최고치에 달했던 1991년 즈음에는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1만3000명을 넘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었다. 지금은 4500여명에 불과하다. 매우 단기간에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자연환경도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안전하다. 자연재해로 사망하는 숫자는 연간 10명이 안 된다. 태풍 차바 이전까지는 자연재해 사망자가 거의 없었다.”

-‘세월호 사고’ 등으로 인해 재난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예민해져 있다. 국가의 위기관리에 대한 요구도 높다. 우리나라 재난관리의 현주소를 진단해본다면.

“사실은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매우 새롭다고 생각되는 위험사고들도 이미 선진국에서 경험했던 것들이다. 우리나라 세월호 사고가 있기 전 1994년 북유럽 에스토니아에서도 여객선 사고로 약 900명이 사망했다. 제천 피트니스클럽 사고에 앞서 영국에서 그렌펠타워 화재로 약 80명이 사망했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우리 국민들은 유달리 중앙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왕조실록은 천변재이(天變災異)에 대한 기록을 매우 꼼꼼하게 했다. ‘하늘과 인간이 서로 교감한다(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고 해서 재난 발생의 원인이 왕에게 있다고 보고 그 책임을 요구했다. 아직 그런 문화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위기관리’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도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에 관리 또는 대처 미흡으로 인재(人災)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규제가 중요하다. 안전과 규제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10명이 사망한 2014년 마우나오션리조트 폭설 사고, 5명이 사망한 2015년 의정부 그린아파트 사고, 40명이 사망한 2008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 등은 모두 샌드위치패널 건축이 원인이다. 그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더 저렴하고 쉬운 공법이 없다는 이유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자본의 논리에 밀려 규제를 강하게 못하는 것이 근본원인이다. 안전을 위해서는 강력한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국민의 정서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나.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적절하지 않다. 원인을 근본적으로 파고들지 않고 마치 개인의 잘못인양 미룸으로써 쉽게 결론을 얻으려는 것이다. 모든 안전사고에는 구조적인 요인이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어 원청업체들이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안전을 책임질 능력이 안 되는 하청영세업자들에게 위험한 일을 모두 떠넘겨놓고는 사고가 나면 안전불감증이 원인이라고 한다. 과학적, 제도적 원인을 명확히 찾아 모든 국민들이 공유하고 개선해나갈 때 비로소 안전 사회가 될 수 있다.”

-중앙정부-지방정부의 위기관리체계도 문제가 있다.

“안전 문제는 중앙집중적 업무가 아니라 분산돼 있다. 폭설, 폭우, 지진, 해일, 교통, 화학, 식품, 독감, 의료 등 워낙 분야가 다양하므로 대통령이나 총리, 중앙정부가 모두 관리·책임을 질 수가 없다. 각각의 위험관리는 현장의 분산된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중앙정부는 그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관리하는 ‘2차적 위험관리’를 해야 한다.”

-울산의 경우 국가산업단지 관리를 산업자원부가 하다 보니 울산시는 현황 파악도, 대책 수립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다국적 기업 유니온 카바이드에서 독성화학물질이 새나가 하룻밤 사이에 3000여명이 사망한 ‘인도 보팔 참사’를 계기로 1986년 미국에서 ‘비상사태 계획 및 지역사회 알 권리에 관한 법’(EPCRA)이 만들어졌다. 석유화학단지 인근에 사는 울산시민들은 그 공장에서 무엇을 만드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모른다. 정보공개를 요청해도 응하지 않는다. 주민들이 산업단지에 숨겨진 위험을 알고 지자체 차원에서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알 권리 법’이라 불리는 EPCRA법의 제정이 꼭 필요하다.”

-공동체 중심의 자발적 안전관리기구가 필요하지 않나.

“울산 동구에서도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사업을 하는 등 전국적으로 안전관련 자치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안전을 위해 별도의 자치기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는 공동체가 안전도 담당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의용소방대, 자율방재단, 자율방범단 등 별도의 안전관련 민간단체가 많다. 다만 주민주도형으로 잘 돌아가는 조직이 아니라 정부의 요구에 의해 하향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문제다.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정비·체계화가 필요하다.”

-일본은 ‘기억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한다’고 한다. 우리도 조선왕조 때는 기록을 잘 했으나 근래 들어서는 오히려 기록을 안 한다.

“우리도 미국처럼 독립된 사고조사위원회가 필요하다. 독립적인 기구가 아니면 사고 조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를 해수부가 조사한다면 피해자들이 그 결과를 믿을 수 있겠나. 미국은 NTSB(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 CSB(화학안전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독립기구가 있다. 사법기구는 아니나 큰 사고 발생 시 철저히 원인을 조사해서 밝혀내고 자료를 만들어 그 교훈(lesson learned)을 알린다. 우리나라는 민관합동조사위원회를 꾸려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양 하지만 갑작스럽게 모여서 뭘 하겠는가. 다행이라면 국가사고조사위원회 구성에 관한 법안이 제출돼 있다.”

-울산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재난은.

“도시화에 의한 불투수성으로 인해 차바와 같은 국지성 집중호우시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 높다. 우선 위험성이 높은 지하공간에 차수막과 배수관을 갖추도록 하고, 기상통보는 예보(forecast) 뿐 아니라 ‘2시간 후에 비가 많이 내린다’고 알려주는 나우캐스팅(nowcasting·현재 예보)을 통해 대피를 용이하게 하는 등 울산시 차원의 국지성집중호우대책이 필요하다.”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정지범 교수는

-서울대 학사(원자핵공학), KAIST 석사(원자력공학), 연세대 박사(도시공학)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2008~현재)

-통계청, 사회통계조사(사회위험 부분) 자문위원(2009~현재)

-국무총리실, 기후변화 대응 재난관리 민간 TF위원(2011)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안전부문) (2015~현재)

-UNIST 도시환경공학부 부교수, 복합재난관리센터장(2016~현재)

-국가종합위기관리 이론과 실제(법문사, 2009)

-미래 선진한국의 행정연구(법문사, 2009)

-위기관리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법문사, 2009)

-재난에 강한 사회시스템 구축(법문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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