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성장으로 기회의 땅이던 울산
조선 불황과 미래 먹거리 불투명으로
위기 극복의 저력 의심받는건 아닌지

▲ 이태철 논설위원

‘인생무상’이라고 했던가. 누군가는 “세상은 살아갈수록 복잡해지고, 인생은 살아갈수록 간단해진다. 그래서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들면 떠날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지나친 비약일지는 몰라도 꿈을 좇아 ‘기회의 땅’ 울산을 향하던 발걸음이 멈추면서 드는 생각이다. 조선산업의 부진으로 촉발된 울산경제에 대한 걱정때문으로, 수십년 내린 뿌리를 거두고 떠나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꿈꾸는 도시 울산의 저력’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신화의 현장이 일순간 ‘위기의 땅’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어서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가슴에 작은 꿈 하나 품고 울산을 찾았듯이 ‘88서울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 시작한 울산과의 인연이다. 두 아이를 성장시키고, 스스로는 ‘은퇴’라는 단어를 실감할 나이에까지 이어졌으니 운명과도 같은 동행의 길이 아니었나 싶다. 울산이 ‘산업입국’의 전진기지를 넘어 ‘산업수도’의 꿈을 키워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영광의 순간, 함께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광역시 승격의 꿈을 이룬 울산이 ‘큰 울산’을 넘어 ‘글로벌 창조융합도시’라는 더 큰 꿈을 꾸기에 이른 현 시점까지 일원으로 남아 있으니 더욱 그렇다. 비록 ‘환경오염’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 마저도 슬기롭게 극복, ‘생태도시’로 거듭나는 저력을 보여주면서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 울산’에 대한 자부심까지 넘쳐났다.

실제로 ‘울산 몽(夢)­꿈꾸는 도시 울산’은 언제나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혹자들은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포경전지기지외에는 뚜렷하게 내세울 것 없었던 농·어촌지역에서 수출 1000억달러를 돌파하는 경이로움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발 더 나아가 고도성장과정에서의 부작용으로 얻어진 ‘회색 공해도시’의 오명마저도 깨끗이 씻어내고 녹색도시, 생태도시 울산의 면모를 다지고 있다. 꿈을 현실로 바꾼 울산사람의 무한한 저력이 발휘된 결과다. 산·바다·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에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몰려있는 산업단지가 즐비한 전국 최고의 부자도시 울산의 자신감은 잘 휘어진 활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결코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최근의 모습은 다르다. 잔뜩 위축돼 있다. 재투자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야 할 기업인들은 언제라도 발을 뺄듯이 몸을 사리고 있다. 근로자들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제몫 찾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2011년 지자체 최초로 수출 1000억달러를 돌파한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는 울산의 경제상황과 연결돼 있다. 4대 주력산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끌었던 울산 수출은 2016년 652억달러, 2017년에도 700억달러(잠정)에 못미치며 2년 연속 600억 달러대에 머물렀다. 주력업종 중 하나였던 조선업 부진이 결정타였다. 그나마도 자동차가 근근히 버티고, 정유·석유화학의 선방이 있었기에 더 이상의 추락은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믿을 구석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는 환율과 유가상승이 조선업 부진의 빈자리를 메꿨던 자동차 산업과 정유·석유화학산업 분야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일자리 중 수출에 의한 일자리 비중이 64.1%에 달하는 울산 사람의 살림살이가 언제 흔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단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울산시가 4차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대응,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미래전략사업의 불투명성도 한몫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걸핏하면 국가지원대상에서 배제되기 일쑤로, ‘울산홀대론’까지 제기될 정도다. 자칫 중앙정부로부터도 울산의 저력이 의심받은 탓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태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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