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올해 3월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된다. 기존의 교육이 산업화 시대 평균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으로 단편적 지식과 암기 위주 교육이었다면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창의력과 문제해결력, 핵심 역량을 키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AI(인공지능)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그런 것 같다. 수업 중 홍콩 표지판에 나오는 ‘緊急出口在列車兩端(긴급출구재열차양단)’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뜻 찾기라는 과제를 주었다. 내가 생각한 빠른 방법은 인터넷에서 필기 인식으로 한자를 검색해 한 글자씩 뜻을 찾고 종합해서 번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폰을 이용해 텍스트 인식으로 번역을 찾기도 하고 심지어 질문 사이트에 표지판 사진을 찍어 올리고 번역을 부탁하기도 했다. 1분만에 ‘긴급 출구는 열차의 양쪽 끝에 있다’라고 답을 찾아냈다.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이 것이 앞으로 진행될 AI시대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나온 노래방은 우리에게 노래 가사를 기억하는 능력을 앗아갔고, 내비게이션은 길을 찾아주고 교통사고 범칙금을 아끼게 해주었지만 길을 찾아내는 우리의 동물적 본능을 앗아가 버렸다. 그래서 나는 걱정된다. 수업에서 홍콩 표지판을 단번에 기술에 의지해 해결했던 것처럼 AI시대에 기계가 제공하는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마도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하되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권하는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그 대안으로 느껴진다. 수업 시간을 활용해 책 한 권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쓰는 통합적인 수업이다. 독서 일지를 쓰면서 꼼꼼히 읽고 대화하기, 설명하기, 토론하기의 형태로 생각의 폭을 넓힌 후 발표하기, 서평쓰기, 보고서 쓰기 등을 통해 책의 의미를 언어화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교육에서 독서가 교과별로 분절적이고 짧은 지문의 내용을 수동적으로 읽고 필요한 정보만 찾았다면 이 수업은 적어도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친구와 생각을 나누면서 자신이 성장하는 기회를 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독서를 공적인 영역으로 가져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공적인 담론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또한 AI시대에 필요한 문제해결력과 정확한 판단력은 물론이고 프랑스의 바깔로레아 시험이 추구하는 것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시민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작년 울산광역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고등학생 토론대회의 지정도서인 플라톤의 <국가론>을 2명의 학생과 읽으며 ‘우리가 바라는 국가의 모습을 말하다’를 주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 국가와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론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준비하면서 나눈 대화는 독서의 즐거움은 물론 플라톤이 제시한 철학의 틀로 우리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고 학교 수업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갈증을 풀 수 있어서 좋았다고 아이들은 말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이런 즐거움을 모든 학생들이 경험하면 좋겠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책 속에 길이 있다.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