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허세를 부리는 ‘졸부’들은
품격 갖춘 서구권의 중산층과 달라
가진만큼 책무 지는 선진시민 돼야

▲ 김두수 정치부 서울본부장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중산층과 선진 시민의 조건은 대략 5가지다.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나만의 독선을 지니지 말 것, 불의와 불평, 그리고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이 있는데 특히 자신의 주장과 신념이 매우 중요한 것 등이 기준이다. 같은 유럽권이라도 프랑스의 중산층 조건은 문화적 가치와 낭만을 모르면 안된다. 먼저 한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스포츠와 함께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별미로 손님을 접대 할줄 아는 매너, 사회 봉사단체 활동, 사회 정의가 흔들릴 때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적극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들 나라 외에도 유럽의 중산층은 최소한의 품격을 갖춰야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공통된 조건은 ‘가진 사람과 누리는 사람은 명예만큼 의무와 책무를 다하는’ 소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OECD 상위권인 미국과 캐나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 역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면하는 부자들은 중산층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은 어떠한가? 우선 부자냐, 아니냐의 기준이 첫째다. 여기에다 어느 곳에 살고 있고, 주거의 평수와 브랜드, 그리고 월 수입 기준에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현금과 달러’ 그리고 요지의 부동산을 최대한 많이 보유하고, 월수입이 가장 높은 ‘알짜 부자들’은 대부분 서울의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라고 했다. 강남의 최고 비싼 아파트의 평당가격은 8000만~1억2000만원 수준이다. 강남의 아파트 평당가격이 비수도권의 18~20평 아파트 한채 값과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강남의 압구정동 아파트단지 역시 최고 부자들의 동네다. 이 가운데 총 5000여 가구의 현대아파트는 전세만 최소 6억원에서 최대 15억 안팎으로 고소득자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입주민 일부가 경비원에게 이른바 발렛파킹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은 곳이기도 하다. 이 아파트 경비원 94명은 올해초 ‘1월31일까지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아파트 입주민측과 경비원측이 팽팽하게 엇갈린다. 입주민측은 올해부터 경비원 인력을 전원 용역으로 전환키로 했지만 해고는 아니다고 강변하고 있다. 경비원측은 “해고에 이어 용역전환은 입주자대표회의 일방적 결정으로 전형적인 갑질”라고 항변하고 있다.

용역전환의 논란과 관련 일각에선 입주민과 경비원간 발렛파킹의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고, 다른 한편에선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원 임금인상에 따른 입주민들의 관리비 등 ‘지출경비 줄임’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드러난 팩트는 정부의 최저 임금인상 등 곁가지는 ‘이유같지 않는 이유’일뿐, 입주민들의 일방적 해고 통보 만큼은 분명하다는 게 중론이다. 전형적인 입주민의 갑질 행태로 ‘강남의 나쁜 부자들’이다. 이를 두고 최고의 품격을 갖춘 ‘성실한 부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강남의 부자라고 해서 모두 비판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돈으로 허세를 부리며 우리사회의 계급장으로 착각하고, 함께 사는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졸부(猝富)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연목구어일 뿐이다. 24일 통계청과 울산시에 따르면 관내 중·대형 아파트는 대략 400여개 단지에 3만6000여명의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역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상대적 ‘부자 아파트’는 남구 옥동과 신정동 등 4~5곳 대형 아파트 단지다. 사람들은 “서울 강남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울산이 최고의 부자도시”라고 말한다. 유럽 중산층의 기준은 아닐지라도 ‘부자도시 울산=품격 갖춘 노블리스 오블리제’ 선진시민을 기대한다.

김두수 정치부 서울본부장 duso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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