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구투야의 산채에서 하지왕, 우사, 모추, 구투야, 달기, 소마준, 건길지가 서로 의기투합해 밤새 술을 마시며 군신관계의 의를 다졌다.

다음날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건길지와 함께 검바람재 산채를 내려왔다. 건길지는 하지왕 일행을 비화가야의 국읍 비사벌성으로 초청했다. 건길지는 하지왕에게 아예 비사벌성에 머무르면서 대업을 도모하라고 청했다. 건길지의 대접은 극진했다. 연일 진수성찬이 올라오고, 악공들의 장단에 아리따운 무희들이 가무를 추었다. 하지만 하지왕은 하루바삐 소공스님을 뵙고 대업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얻고 싶었다. 하지왕은 비사벌성에 머물라는 건길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싶었으나 비화가야의 군장령인 강고내가 강청을 하고 우사와 모추도 안주하려는 기색이 보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닷새가 지나자 하지왕이 건길지에게 말했다.

“공은 매일 진수성찬에 음주가무를 즐기게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인데 무엇인들 아깝겠습니까? 대가야를 회복하고 24가야국을 일통하는 대업에 소신도 함께 동참하고 싶습니다.”

“고마운 일이지만 저는 소공스님이 주석하고 있다는 화왕산 관룡사로 가고 싶습니다.”

“소공스님은 운수행각을 하는 분인데 지금은 화왕산을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합니다. 천천히 머물다 가시지요.”

건길지는 이런저런 핑계로 하지왕 일행을 붙잡아놓고 있었다.

하지왕도 마지못해 느긋하게 말했다.

“그럼, 음식 청을 하나 해도 될까요?”

“듣던 중 반가운 말씀입니다. 무슨 음식이든 분부만 내리십시오.”

“저는 고구려 평양에 있을 때 먹은 곰발바닥이 생각나는군요. 주방에 명해 그것을 요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하, 곰발바닥 요리라. 곧 대령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날 밤 하지왕은 우사와 모추를 불러 은밀하게 여장을 꾸려 급히 비사벌성을 떠났다. 하지왕은 비화가야 땅을 벗어나 대사국 경계를 넘어가자 비로소 말 고삐를 당겼다.

모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하지왕에게 말했다.

“마마, 우리를 환대해준 건길지에게 말도 없이 마치 도둑처럼 도망치듯 떠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태사령 우사도 거들었다.

“비사벌성은 가히 가야의 중심이 될 만한 곳입니다. 그곳에 머물면서 대업을 구상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건질지는 대왕마마께 충성되어 보였습니다.”

하지왕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오래 묵으면 짐이 되지요. 더욱이 비사벌성의 호족들과 군장령 강고내의 눈빛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루만 더 머물렀어도 나를 잡아 박지와 석달곤에게 넘겼을 것이오.”

 

우리말 어원연구
비사벌: 비사벌은 창녕군의 옛이름이다. 비사벌은 불사국으로 바뀌고 다시 비화가야로 확대되었다. 참고로 비사벌은 백제시대 전주의 옛이름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