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알리지말라” 유언

가족들 조용히 장례 치러

울산미협, 추모행사 고민

▲ 故 심수구 작가가 지난 2013년 본지와의 인터뷰 중 ‘싸리나무’ 작품앞에 서있는 모습.

경상일보 자료사진

울산 화단의 큰 별이 졌다. 서양화와 설치작업으로 지역 미술계를 든든하게 받쳐주던 심수구 작가가 지난 20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영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70세.

심수구 작가는 ‘싸리나무 작가’로 통했다. 싸리는 지난 20여년 간 그가 즐겨 사용했던 오브제였다. 싸리를 통해 그는 온갖 굴레에 종속된 현대인의 자화상과 몸부림칠 수록 더 옥죄는 숨가쁜 현실을 표현했다. 동시에 싸리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서정성이 한국적 토속성을 의미한다고 평가받으며 국내는 물론 해외 화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싸리를 활용한 그의 대작은 울산시청사 본관 로비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의 미술 입문은 울산제일중과 울산고 재학시절 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본 스승에게 발탁되면서 가능했다. 고(故) 최희 작가는 생전 “심 선생이 중학생이었을 때, 비오는 시계탑 사거리를 수채화로 그렸는데, 그림으로 자리매김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싸리나무 작업을 봤을 때 세계적인 작품이 될 거라 예감했다. 예감이 현실로 다가와 흐뭇하다”고 회고했다. 심 작가는 미술 교과서가 없던 시절, 일본 잡지를 통해 처음으로 ‘모빌’을 배웠고, 스승인 최희 작가가 엮은 미술교과서 <새미술> <서양미술>을 보면서 화가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최근 그는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건강을 곧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에는 바깥활동마저 거의 하지 못했다. 심 작가는 그런 와중에도 몇몇 지인에게 자신의 작업실을 정리해 줄 것을, 자신이 꼭 챙겨야 할 제자의 뒷일을 부탁했다. 그의 죽음이 바로 알려지지 않은데는 ‘자신과의 인연은 추억으로만 간직해 달라’며 ‘주변에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언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역 미술계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를 기억하기에 갑작스런 부고를 믿을 수 없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울산미술협회는 고인의 유언을 따라 한동안 부고를 알리지 않았으나, 그를 추억하는 수많은 작가들과 미술 관계자의 문의가 빗발치자 현재는 그를 기리는 추모행사를 고민하고 있다.

심수구 작가는 홍익대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서울과 울산, 스페인 마드리드, 제주도립현대미술관, 서울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등에서 20여 회의 개인전을 치렀다. 18회의 국제아트페어와 ‘한일교류현대미술전’ ‘한국현대미술제’ 등 그룹전에도 참여했다. 울산지역 최대의 국제미술제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추진위원으로 다년간 활동하며 국제행사가 자리를 잡는데 힘을 실었다. 그의 작품은 울산시청사, 장생포고래박물관, 울산지법 등에 소장돼 있다. 홍영진기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