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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인물로 읽는 울산유사
[인물로 읽는 울산유사(284)]1960~1970년대 울산지역 뱀장수로 사람냄새 풍기던 이웃문화예술편 (28)해술이를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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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8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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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술이가 뱀 장사를 했던 신정2동 옛 울산MBC 사옥앞 거리. 울산MBC와 인연이 깊었던 해술은 울산MBC 사옥이 신정2동에 있을 때는 사옥 앞에 뱀 집을 차려 놓고 장사를 했다. 이곳은 해술이가 뱀 장사를 할 때만 해도 빈터였지만 지금은 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다

울산서 유명했던 뱀장수 김해술씨
남녀노소 이름 부르며 친근했던 인물
뱀탕을 많이 먹어 몸에 열이 많아
겨울에도 러닝셔츠만 걸치고 다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사로 생 마감
군시절 고문으로 지적장애 가졌다 말해


'인물로 읽는 울산유사’를 6년 가까이 쓰면서 독자들의 가장 많은 요청 중 하나가 해술의 행적을 취재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많은 독자들은 해술이가 왜 요즘 보이지 않는지 그가 아직 살아있는지 궁금해 했다.

오래전 폐간된 한울신문 1997년 12월24일자에는 해술의 죽음과 관련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23일 오전 9시40분께 남구 매암동 6부두 앞 폐 콘테이너 박스에서 이 마을에 사는 김해술씨(58)가 숨져 있는 것을 김 모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수 십 년 동안 인근 유명산을 찾아다니며 뱀을 잡아오던 땅꾼 김씨의 사체가 심하게 부패돼 속옷만 입은 채 컨테이너 박스에서 숨진 점 등을 미뤄 추위에 못 이겨 동사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해술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적에 관심을 갖고 그의 죽음이 신문에 까지 보도가 되었을까.

1960~1970년대 울산에 살았던 사람들 중 해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울산 사람들 사이에는 요즘도 그에 대한 얘기가 전설 같이 전해오고 있다.

해술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소설가 김옥곤씨는 그의 삶을 소재로 단편 소설을 썼다. 김씨는 어릴 때 해술을 보았다. 김씨는 자신이 해술을 소재로 소설을 쓴 것이 “60년대 울산이 공업도시가 되면서 울산사람들 대부분이 개발과 건설을 앞세우면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길 때 해술이는 사람냄새를 풍기면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지금 울산에 떠도는 해술의 얘기가 대부분 전설이지만 1967년 2월 울산초등학교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불이 붙고 있는 교무실로 들어가 귀중한 책과 서류를 가져 나온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화재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용기를 칭찬했지만 정작 해술은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표정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술회하고 있다.

해술은 두 가지 아이러니를 남겼다. 그가 울산에서 유명해 진 것은 뱀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곳은 뱀이 없는 섬 울릉도다. 그는 뱀탕을 많이 먹어 몸속에 열이 많이 나 심지어 겨울에도 짧은 러닝셔츠만 걸치고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울산 전역을 누볐다. 그러나 그는 동사로 생을 마감했다.

1939년 2월20일 경북 울릉군 서면 남양리 471번지에서 태어났던 김해술(金海述)은 울산시 남구 장생포동 327번지에 주소를 두고 울산을 누볐다.

울릉도에서 태어났던 그가 언제 어떻게 울산으로 왔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가 처음 울산에 자리 잡은 곳이 장생포 울산지방해양수산청 앞 빈터였다. 당시 이곳에는 6·25 피난민들이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해술 역시 이들과 함께 천막 속에서 생활했다.

몇 년 후 천막이 철거되자 다시 옮겨 간곳이 마을 뒷산 천지만디였다. 그는 이곳에 살 때도 뱀 한두 마리를 상자에 넣어 다니면서 팔았다.

이 무렵 그는 장생포에서만 뱀을 팔지 않고 이웃 마을 용연까지 가 뱀 장사를 했다. 60년대 초반 용연 마을에 살았던 박형구 전 울산MBC 보도국장(80)은 “대학 졸업 후 내가 몸이 좋지 않아 집에서 요양하고 있는데 어느 날 해술이가 찾아와 뱀탕이 몸에 좋다고 해 먹은 적이 있다”면서 “그 때만 해도 해술이와 내가 깊은 인연을 맺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박 전 국장과 해술의 인연은 박 전 국장이 방송국에 취직을 하면서 더욱 깊어진다. 해술은 옥교동 UBC가 있었던 청자다방 앞에서 처음으로 뱀 장사를 했다. 울산 MBC는 창립 때 UBC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하다가 2년 후 개명했다.

울산 MBC 출신으로 2000년 ‘MBC 패트롤’ 진행자로 이름을 날렸던 김잠출 PD도 해술이와 인연이 깊다.

“제가 해술을 처음 만난 곳이 70년대 중반 강동 달골이었습니다. 제가 강동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인데 해술이가 우리 마을에 머물면서 뱀을 팔러 다녔습니다. 그는 우리들을 만나면 ‘아엠 어 보이’ 등 영어를 해 호기심을 갖고 본적이 있습니다. 그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왔을 때도 우리 마을에 살고 있어 술을 가끔 함께 마셨습니다.”

해술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제가 학성동 사옥에 있을 때는 주거지를 도심으로 옮겼는지 방송국에 자주 왔는데 그때마다 사무실로 찾아 와 인사를 하고 갔습니다”

박형구씨와 인연도 계속된다. 박 전 국장은 “울산 MBC가 신정 2동에 있을 때는 해술이가 아예 우리 회사 앞에 뱀 통을 두고 뱀을 팔았는데 이때는 뱀탕이 기관지에 좋다는 소문이 나 우리 회사 아나운서들도 뱀탕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송직원들과 뱀탕집을 가보니 해술이가 뱀을 만지고 있다가 독사에게 물려 우리들이 혼비백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해술은 태연히 저에게 독한 소주 한 병을 사오라고 한 후 그 소주를 뱀에게 물린 팔뚝에 부은 후 나머지 소주를 모두 마시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해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무렵 해술은 스스로 뱀을 잡기도 했다. 당시 그가 뱀을 잡았던 곳이 옥교동 갑사골이다. 갑사골에는 현재 보건환경연구원이 들어섰는데 옛날에는 이곳에 뱀이 많아 소를 먹이러 갔던 어린이들이 뱀에 자주 물리곤 했다.

당시 옥교동에 살았던 김석도 장생포고래박물관장은 “갑사골은 뱀이 많기로 유명한데 우리가 이 산에 갈 때면 항상 해술이가 뱀을 잡는 것이 눈에 띄었다”고 말한다.

60~70년대 그는 장생포와 강동에 살면서도 자주 오토바이에 뱀통을 싣고 시내로 와 팔았다. 이때도 그는 러닝셔츠만 걸치고 옥교동과 성남동, 학성동 등 도심을 누볐다.

이 무렵 그는 울산여중을 자주 드나들었다. 울산여중에 자주 갔던 것은 학생들이 그를 환영했기 때문이다.

당시 울산여중에 다녔던 이모씨(68)의 얘기다. “해술은 학교에 오면 항상 운동장으로 들어와 사방을 둘러보면서 거수경례를 한 후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오빠’라고 부르면서 환영했습니다. 당시 해술은 이미 30대의 나이었는데도 애나 어른이나 모두 그를 해술이라고 불렀지만 싫어하는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학교 밖에서도 우리들이 해술이가 지나가면 ‘해술아’ 하고 고함을 쳤는데 그러면 해술이가 ‘왜 오토바이를 태워 줄까’ 하고 멈추기도 했습니다.”

80년대에는 시내 문화탕 앞에서 뱀 장사를 했다. 당시 문화탕 앞에는 건달들이 울산과 부산을 다니는 총알택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달들이 뱀 때문에 손님들이 오지 않는다면서 자리를 옮기라고 했지만 해술이가 그대로 있다가 건달들로부터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해술이를 아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그가 왜 지적장애를 가졌을까 하는 것이다. 그가 군대까지 갔다 온 것을 보면 행동에 크게 지장을 받을 만큼 지적장애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당시 울산사람들 사이에는 그가 산에서 뱀을 잡다가 간첩으로 오인을 받아 중정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중 고문을 너무 많이 당해 저능아가 되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떠돌았다.

이에 대해서는 박형구 전 국장이 직접 해술에게 물은 적이 있다. 박 씨에 따르면 해술이 군에 있을 때 부대장 지프를 몰았는데 이 부대장이 공금을 많이 횡령해 해술이가 부대장과 함께 군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는데 이 때 부대장이 모든 죄를 자신에게 덮어씌우는 바람에 고문을 많이 당해 저능아가 되었다는 얘기를 해술이 했다고 말한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해술의 재산 문제도 초기 뱀 장사로 꽤 돈을 많이 벌었지만 부인이 없다보니 여자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고 결국 이들의 꼬임에 빠져 돈을 모두 날리고 늘 가난하게 살았다고 말한다.

그의 행적이 울산에서 사라진 때가 80년대 말이다. 김옥곤씨는 이 무렵 해술이를 한번 보았는데 살기가 궁했던지 돼지를 키운다면서 꿀꿀이죽을 오토바이 뒤에 싣고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 때 해술은 살이 많이 빠져 옛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다시 울산시민들에게 알려진 것은 1997년 12월23일 동사로 죽었다는 신문 보도를 통해서다. 그의 시체는 백천병원(현 중앙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었고 다음날인 24일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울산공설화장장에서 화장되었다.

그가 간지 20여년이 넘었지만 그의 전설 같은 얘기는 오늘도 울산시민들 사이에 계속되고 있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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