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하지왕의 방에는 차를 끓이는 다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탕관, 다관, 주전자, 사발잔, 차시, 차건, 물항아리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다도는 한반도의 남단에서 꽃이 피었다. 본래 다도는 부처님께 차를 공양드리는 의식에서 생겨났다. 부처님께 올리는 차는 물을 끓이는 방식에서부터 마지막 찻잔에 올릴 때까지 하나하나 정성과 다례가 들어가야 했다. 아직 불교를 받아들이지 못한 북방은 그냥 막사발에 보리숭늉 들이마시듯 마시는 음차 풍습을 가지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일찍 불교가 전래된 가야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차공양의 영향으로 다례가 발달해 있었다.

채희가 세 발이 달린 작은 솥인 탕관에 물을 끓였다. 차를 끓이는 채희의 옆모습을 보면서 언뜻 우시산국 달천 철장에서 함께 놀았던 소라와 고구려에서 질자 생활을 한 다혜, 광개토태왕의 딸 상희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모두 같은 또래들인데 채희만큼 이쁘게 자랐을 테지.’

하지왕이 채희에게 말했다.

채희가 끓인 차를 사발잔에 따르며 말했다.

“마마, 저희 집은 원래는 우시산국 달천에 살았습니다.”

“달천이면 나도 어릴 때 있었던 곳이다.”

“가야가 신라 달천을 쳤을 때 우리 가족은 외가가 있는 이곳 비화국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전화를 당했구나. 이곳에 와서 고생이 많구나.”

“아니옵니다. 이곳 비사벌 국읍은 건길지 한기님이 어질고 물산이 풍부하여 살기 좋은 땅입니다. 저는 한기님의 은총을 입어 무희로 뽑혀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행복하다니 다행이구나.”

그러나 채희의 얼굴은 행복한 표정이 아니었다. 탕수의 김이 서린 그녀의 희고 아리따운 얼굴에는 한 줄기 수심의 그늘이 져 있었다. 탕수에 산차 잎을 넣자 차향이 방안을 은은히 감돌았다. 이 차는 가야 황차로 허황후가 수로왕에게 시집 올 때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차로 그 향이 깊고 풍미가 좋았다.

채희가 하지왕에게 차사발에 황차를 따랐다. 차를 따르는 자태가 마치 느린 가야 춤사위를 보듯 곱고 아름다웠다. 하지왕이 두 손으로 큰 사발을 들고 황금 차를 마시니 마치 바다를 마시는 속이 시원하고 그 향이 감미롭고 깊었다.

하지왕이 차를 음미하는 동안 채희가 가무를 추었다.

다전리에 봄이 오면 삼월이라 삼짇날에

다전리에 햇차 따서 만장샘에 물을 길어

어방산에 솔갈비로 밥물솥에 끓인 물에

천군님의 다한 정성 가야그릇 큰 사발로

천겁만겁 우려내어 가야차로 올립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차문화가 가장 먼저 성립된 가야국의 전통찻잔은 사발잔이다.

김해 차밭골(茶田, 현재 동상동 일원)에서 채집한 차 민요(채집자, 김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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