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아버지가 죽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채희는 여가전쟁에 참전한 비화가야의 한기 건길지의 포로가 되어 이곳 비사벌성으로 오게 된 것이다.

하지왕이 두 번째 우려낸 가야 황차를 마신 뒤 채희에게 말했다.

“그럼, 철장에서 함께 놀던 소라도 알겠구나.”

하지왕은 어릴 때 달천 철장의 쇠둑부리에서 함께 놀던 소라를 떠올렸다. 쇠둑부리 가마에 소라와 함께 떨어져 불이 들어오기 전에 숯더미를 헤치고 초롱구멍으로 간신히 탈출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소라는 달천에서 함께 자란 제 동무지요. 소라를 통해 마마의 소식을 듣곤 했어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소라와 골편수 가족들은 가야군에게 잡혀 왜나라로 끌려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철을 만드는 쇠둑부리의 최고 야장인 골편수 박판수는 왜의 용병을 이끌었던 목라근자에게 잡혀 종발성을 통해 왜로 끌려갔던 것이다.

“왜나라로?”

“그러하옵니다.”

“전쟁으로 사람들을 고향 땅을 잃고 이국 땅으로 떠돌아다니는구나. 나도 너와 마찬가지 신세야.”

하지왕은 어린 시절 고구려와 백제, 신가야의 남북대전으로 인해 아버지 회령왕이 전사하면서 신라와 가야와 고구려를 전전했으며 여가전쟁으로 인해 다다라국으로 내려왔다가 백제에게 빼앗긴 대가야를 외교와 전쟁을 통해 다시 회복하고 간신히 어라궁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박지가 신라장군 석달곤의 병력을 끌어들여 정변을 일으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상갓집을 돌아다니는 개 마냥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었다.

채희가 하지왕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어쨌든 마마는 내일이 오기 전에 이곳에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알겠다. 이 은혜는 내가 잊지 않으마.”

하지왕은 채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채희가 나간 뒤 하지왕은 건길지에게 삶은 곰발바닥 요리를 시킨 뒤 곧바로 우사와 모추를 불러 행장을 꾸린 뒤 말을 타고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하지왕은 왜 급히 밤도와 비사벌성을 벗어났는지를 우사와 모추에게 설명했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비화국의 국경을 넘어 대사국의 낙노땅에서 지리산 칠불사로 향하고 있었다. 칠불사에 머물고 있다는 석공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우사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결국 호랑이 소굴에서 도망친 셈이군요.”

“그렇소.”

 

우리말 어원연구

대사국: 현재 하동군.

낙노: 현재 하동군 악양면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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