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용석 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교수

남반구가 여름이면 북반구는 겨울이고, 남반구가 겨울이면 북반구는 여름이다. 계절은 순환된다. 지구 북반구에서는 눈이 내리고, 남반구에서는 비가 내린다. 북반구는 부유하고, 남반구는 가난하다. 이처럼 계절은 순환되는데 경제적 삶의 형평은 고르지 않는 것 같다.

며칠 전 아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웃음>을 읽었다고 해서 아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보, 당신은 눈과 비,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아요?’라고. 아내의 대답은 ‘눈’이 더 좋다고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은 청명하고 맑은 공기의 하얀 겨울이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또한 이 계절에 어울리는 눈이 더 좋다.

내가 눈을 좋아하는 이유를 되묻는 아내에게 ‘당신이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제목 <웃음>에 눈과 비를 각각 붙여서 읽어보세요.’라고 주문했다. 눈에 웃음을 더하니 ‘눈웃음’이 되고, 비에 웃음을 더해 읽으니 ‘비웃음’이 된다. 흉보듯 빈정거리거나 업신여기는 비웃음보다 소리 없이 눈으로 살포시 웃는 눈웃음을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곰곰이 웃음을 우리네 살림살이에 빗대어 보았다. 눈이 비가 되고, 비가 눈이 되는 자연법칙은 순조로워 보인다. 엉뚱스런 내 답변에 아내는 눈이 더 좋은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며 나에게 눈웃음을 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눈웃음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연습부족이다. 평상시 웃는 연습을 잘하지 않은 탓이다.

우리는 탈결핍의 세상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해 빈곤은 겹핍이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공평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에서 생겨난다. 눈웃음이 비웃음으로 비웃음이 눈웃음으로 쉽게 변하지 못하듯 우리사회의 불평등한 삶의 양극화, 즉 풍요로움과 빈곤은 계절의 변화처럼 잘 순환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럴까? 호혜부족이다. 평상시 사회구성원간의 호혜적 상호작용에 대한 인식과 이해 그리고 실행이 부족한 탓이다.

눈과 비가 모두 물로 이루어진 것처럼,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자연의 구성원으로 태어났다. 자연의 측면에서 보면 누구든 세상의 것들을 함께 향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누군가는 분당(分黨)을 걱정하는데 반하여 우리 사회의 어느 한편에서는 30% 인상된 연탄 값을 걱정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정치의 민주화 뿐만 아니라 경제의 민주화가 시급하다. 철학자 루소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손용석 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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