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부왕의 간지를 간파한 태자 상신이 말했다.

“아버지, 안됩니다.”

태자는 삶은 곰발바닥 요리를 먹고 죽겠다는 부왕의 마지막 청을 매정하게 거절했다.

부왕은 끝내 곰발바닥 요리를 먹지 못하고 자식이 보는 앞에 목을 매어 죽었다.

하지왕이 우사와 모추에게 말했다.

“초성왕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한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이겠죠. 비록 초성왕은 실패했지만 장시간이 걸리는 곰발바닥 요리를 시켜놓고 그 틈을 타 도망치려고 한 왕의 지혜는 대단하지요.”

실제로 초성왕은 춘추시대 패자 중 한 사람이다. 즉위 후에 주나라 천자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다른 제후국의 제후들과 결맹해 왕위를 공고히 했다. 북쪽 오랑캐들을 진압하고, 현국, 황국, 영국, 기국 등을 멸망시켜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다. 중원의 제나라와 패권을 다퉜고, 소릉의 결맹을 주도하여 잠시나마 중원을 장악하기도 했다. 말년에 성복의 전투에서 진나라에 패배한 뒤 그의 정복활동은 중단되었다. 죽기 전 태자의 자리를 서자 직에게 물려주려하다 오히려 태자 상신에게 반격을 당해 자살함으로써 45년의 통치를 마감했다.

하지왕이 말했다.

“곰발바닥 요리로 초성왕은 실패했지만 나는 성공했지요.”

“음식 하나에 그런 깊은 속뜻이 있었군요. 과연 영명하십니다.”

우사와 모추는 하지왕의 지혜와 박식에 감탄했다.

셋은 칠불사 계곡을 따라 반야봉 칠불사로 올라가고 있었다. 옥구슬 같은 맑은 계곡물이 돌 위를 구르는 정겨운 소리에 말 발걸음도 시원해졌다. 계곡물이 끊어진 곳에 작은 못인 영지가 나타나고 멀리 칠불사가 보였다.

우사가 한시를 지었다.

行到水窮處 坐看七佛寺

우사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여기 우리가 앉은 바위는 김수로왕과 허왕비가 앉아 영지를 보던 곳입니다. 왕과 왕비는 이 곳까지 와서 수도하는 칠왕자를 보지 못하고 이 영지 못에 비친 일곱 아들의 그림자를 보고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갔던 자리지요.”

아들을 출가시킨 김수로왕 부부는 아들들이 보고 싶어 금관항에서 배를 타고 남해바다를 거쳐 섬진강으로 올라와 지리산 골짜기에 찾아왔다. 하지만 왕비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수도 중인 왕자들의 마음이 흐트러질까봐 상봉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안타까운 사연이 담긴 못이군요.”

이들은 말에서 내려 칠불사 경내로 들어갔다.

마당을 쓸던 상좌 하나가 나와 하지왕 일행을 맞이하며 말했다.

“석공스님께서 하지대왕 마마를 아자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행도수궁처 좌간칠불사

-물길 끊긴 곳에 다다라, 앉아 칠불사를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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