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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인물로 읽는 울산유사
[인물로 읽는 울산유사(285)]육군 소령 출신으로 높은자리 사양하고 평생 교단 지켜문화예술편 (29)오반식과 임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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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4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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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 중구 북정동에 있는 오반식 선생의 집. 군 생활을 육군본부에서 김종필 전 총리와 함께 해 출세의 길이 열렸던 오씨는 출세를 마다하고 울산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임란사를 연구하다 이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집은 오씨가 세상을 떠난 후 지금까지 비어 있다.

1926년 북정동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진주사범 진학, 울산서 교사 생활중
6·25전쟁 발발 동생과 전방 입대 자처

전후 일본어 잘해 육군본부에 배치
5·16후 군정에 참여한 김종필과 친해져

육군 소령 제대 등 출세의 길 열렸지만
군수직 뿌리치고 울산여고 교사로 근무
교육계 고위직도 사양, 교감으로 퇴직

퇴임후 임진왜란 관련 연구에 심혈
연구차 日구마모토·학성공원 자주 찾아


박관수, 설두하, 최두출 등 해방 전후 울산에서 교육자로 활동한 사람들 중에는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스승들이 많다.

오반식 선생은 이들처럼 교육경력이 화려하고 교사로 큰 영예를 얻지는 못했지만 평생 평교사로 지내면서도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1926년 북정동 허촌 마을에서 태어났던 오씨가 교육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것은 진주사범을 졸업하면서다. 오씨의 부친 석수(石壽) 어른은 일제강점기 그의 집이 있던 북정동보다는 당시 울산의 최고 번화가였던 성남동에서 더 활동을 많이 해 ‘성남어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일제강점기 북정동은 울산의 중심지로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축구왕 최성곤의 부친 최신출과 양조장을 경영해 울산의 부자로 소문이 났던 고기업도 모두 북정동에서 살았다. 최씨는 북정동에 살았지만 특히 방어진에 임대 건물이 많았다.

석수 어른은 이들만큼 재산이 많지는 않았지만 현재 울산시청 인근 지역과 성안에 땅이 많아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울산초등학교를 졸업한 오반식이 진주사범으로 진학 한 것은 일제 말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사회에는 변변한 직장이 없어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힘들었다. 따라서 학교 졸업과 함께 교사가 되는 사범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오씨가 진주사범에 입학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북정동에서 천재가 났다면서 기뻐했다. 오씨는 진주사범 졸업 후 모교인 울산초등학교 교사로 왔다. 그가 교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 6·25가 일어났다.

6·25 때 교사들은 입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오씨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국가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동생 오소반식과 함께 자진 입대했다.

석수 어른은 오씨와 함께 오소반식, 화식 등 3명의 아들을 두었다. 둘째 아들 이름을 흡사 창씨개명한 일본이름처럼 오소반식으로 지은 것은 요즘처럼 작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소반식이 태어났을 때 울산에는 전염병이 창궐해 갓 태어난 어린이들은 언제 숨을 거둘지 몰랐다. 이러다보니 석수 어른은 둘째 아들의 출생을 동사무소에 신고하지 않고 계속 미루었다. 석수 어른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자 속이 타는 것은 동사무소 직원이었다. 어느 날 길에서 석수 어른을 만났던 동사무소 직원이 둘째 아들의 출생신고를 강권하자 당장 작명이 생각나지 않았던 석수 어른이 ‘작은반식’으로 이름을 올리라고 했고 동사무소 직원이 ‘오소반식’이라고 쓴 것이 그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연세대학을 졸업한 후 90년대 울산교육위원을 지냈던 오흥일씨가 그의 아들이다.

오반식은 입대와 함께 전방을 지원해 6·25 내내 전방에서 근무해 부상을 여러 번 당했다. 특히 그가 학도병들을 데리고 안강전투에 참여해 크게 부상을 입었을 때는 전사했다는 소문까지 나 가족들 모두가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실제로 오씨는 이 때 북한군이 쏜 총알이 대퇴부를 통과하는 바람에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살아났다. 이 때문에 평생 부상 후유증에 시달렸고 다리를 절뚝거려야 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군인은 전쟁터에서 죽어야 하는데 전우들이 많이 전사를 했는데도 나만 살아온 것이 부끄럽다”는 말을 해 주위 사람들을 숙연케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일본어를 잘해 육군본부 정보국에 배치되었다. 그는 진주사범에서 일어 공부를 열심히 해 졸업을 할 때는 통역이 가능했다. 그런데 육본에 가니 5·16을 주도한 후 국무총리를 지냈던 김종필씨가 그 곳에 있어 둘이 친해졌다. 김씨는 공주사범을 졸업했다.

5·16은 그에게 출세의 길을 열어놓았다. 5·16 후 군정에 뛰어들었던 김종필씨를 비롯한 육군본부 동료들이 그에게 고위공무원이 될 것을 권유해 그 역시 육군 소령으로 제대했다.

이때 동료들은 그에게 울산에서 가까운 양산이나 밀양 혹은 사천군수로 가라고 권면했다. 그러나 그는 동료들의 권면을 뿌리치고 앞으로 우리나라의 국운이 젊은이들의 교육에 달려 있다면서 특히 여자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울산여고 평교사로 왔다.

다시 교사로 돌아 온 그는 사회와 도덕 등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고 열심히 가르쳤다. 교사로 활동하면서 그가 취미활동으로 한 것이 조경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학교 정원을 아름답게 꾸몄다.

이처럼 평범한 교사생활을 하고 있던 그가 울산 교육계는 물론이고 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김종필씨를 통해서이다. 울산이 공업도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오씨가 김종필씨와 친하다는 것을 아는 주위 사람들이 없었다. 그런데 울산이 공업도시가 되면서 김종필씨가 박 대통령과 함께 자주 울산을 방문해 공단 시찰을 하게 되는데 김씨는 울산에 올 때마다 오씨를 공단으로 불렀고 심지어는 학교로 찾아오기도 했다. 김씨는 그를 만날 때마다 교육계의 높은 자리를 주겠다고 했지만 이를 사양했다.

그가 교감이 된 것은 퇴직을 할 무렵이다. 이 무렵 주위 교사들이 교장직을 맡은 후 퇴직을 해야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면서 여러 번 권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마지막으로 학성여고 교감으로 퇴임했다.

퇴임 후 제자들을 만나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생각했던 그가 심혈을 기울였던 연구가 임진왜란이었다. 일어를 잘해 일본 역사서를 자주 읽고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던 그는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인들의 기록 중 잘못된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그는 일본 역사서를 통해 임진왜란 때 울산사람들의 피해가 컸다는 것을 알고 이를 알리기 위해 힘썼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실제로 그는 이런 노력을 통해 임진왜란 때 큰 피해를 입었던 울산사람들의 명단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의 친구들이 일본 구마모토에 많은 것은 그가 임진왜란사를 연구하기 위해 구마모토를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임진왜란사를 연구하는 동안 구마모토의 일본인 친구들 역시 울산에 자주 왔다.

특히 그는 임진왜란 연구를 위해 학성공원을 자주 오르내렸다. 그의 조카 오흥일 씨는 “큰 아버님이 임란사 연구를 위해 구마모토를 한창 왕래할 때는 일본인들이 북정동 큰 집에 자주 드나들었고 이들을 통해 구한 자료들도 많았는데 후손들이 이를 챙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눈을 감을 때까지도 임란사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는 2005년 80세로 그가 태어났던 북정동 집에서 영면했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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