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하지왕 일행은 칠불사 아자방을 찾아갔다. 아자방은 반야봉 아래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있는데 넓은 마당 건너편에는 계곡물을 모은 연당과 무산 12봉이 있어 들어가면서 영기를 느꼈다.

아자방에 들어가니 석공스님은 탕관의 물을 숙우에 따르고 있었다.

“하지대왕마마, 어서 오십시오. 마마가 오실 줄 알고 소승이 미리 찻물을 끓여놨습니다.”

“스님, 이 깊은 산속에서 저희들이 온다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요?”

석공이 합장하며 큰절을 한 뒤 말했다.

“부처님의 가피가 대왕마마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옛말에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본다는 말이 있습지요. 만물이 향기로운 태탕한 봄날에 세 분의 몸에서 깊게 배인 땀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어디선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급히 피신하듯 달려와 이곳을 찾은 게 아닙니까?”

그제서야 하지왕은 석공의 통찰력과 신통함에 놀라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운수행각으로 햇볕에 탄 검붉은 얼굴과 유난하게 길고 짙은 눈썹 살이 튀어나왔으며, 눈빛은 사람의 마음속까지 꿰뚫을 듯 날카롭게 빛났다. 민머리인 스님의 두상은 둥글긴 한데 원만하다기보다 울퉁불퉁했으며 체형은 승복 위로 근육과 뼈가 드러날 정도로 강골이었다. 능히 운수행각과 풍찬노숙으로 가히 세계를 일주할 만한 모습이었다.

“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사실 비사벌성에서 우리의 목을 베려는 건길지를 피해 닭이 꽁지 빠지듯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지왕은 석공스님과의 첫 만남에서 한방을 맞은 듯 얼떨떨했다.

“자, 차들을 드시지요. 이 차는 부처님과 칠불에게 공양하는 지리산 야생차입니다. 이 차 한 잔 마시면 세상의 번뇌는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하게 다스려질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하지왕이 차를 마시니 그 향이 그윽하고 맛이 쌉쌀하면서 감미로웠다.

“명산 지리산은 다른 산들에 비해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낮밤의 기온차가 커 차향을 진하게 하고, 지리산 운무는 차향을 더욱 응축시키지요.”

“가야 황차와는 또 다른 맛이군요.”

“허왕비가 천축에서 가져온 가야 황차도 그 맛이 탁월하지만 물맛이 여기와 다를 겁니다. 물은 다도의 체로서 가장 중요하지요. 가볍고, 맑고, 차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냄새가 없고, 비위에 맞고, 탈이 없는 팔덕을 지닌 물을 사용해야 차 본래의 맛이 살아납니다.”

“아, 그렇군요.”

“물의 팔덕을 살펴, 물맛의 우열을 가리는 것을 품천이라고 하는데 소승이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샘을 찾아 품천한 결과, 오대산의 우통수가 물맛의 으뜸이고, 낭자곡성의 달천수가 버금이며, 세 번째가 속리산 삼타수였소. 헌데 그 셋을 합쳐도 지리산 칠불계수를 못 따라오지요.”

하지왕은 차도 따뜻하고 방바닥도 방금 불을 지핀 것처럼 따뜻해 몸이 훈훈해졌다.

“방이 참 따뜻합니다.”

“여기가 한번 군불을 때면 백일 동안 따뜻하다는 칠불사 아자방이지요.”

 

우리말 어원연구

낭자곡성: 현재 충주. 낭자, 낭성으로 불리다 신라 때 국원, 고구려 때 중원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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