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란 삼산초등학교 교사

겨울방학을 맞아 싱글벙글 들뜬 표정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개학이다. 2월1일, 개학 첫날 1교시 간단한 식을 마치고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방학 동안에 한 일, 기억에 남는 장소, 계획한 일 중 실천한 일 등에 대해 간단히 인터뷰하여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면지 종이에 6칸 정도로 칸을 나누게 하고 칠판에 인터뷰할 내용을 번호로 매겨 주었다. 기타난도 하나 만들어 공통 질문 외에 더 알고 싶은 내용을 물어볼 수 있도록 자율권도 주었다. 자유롭게 6명의 친구를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결과를 기록하도록 하였다.

시~작 이라는 구호와 함께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며 서로의 겨울방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얼굴에 웃음을 잔뜩 머금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즐겁게도 보여 개학 첫날의 긴장감보다는 활기차고 자유로운 느낌에 마치 개학을 손꼽아 기다려온 것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었다.

미션을 완수한 학생들의 활동지가 교탁위에 쌓이고, 자신이 인터뷰한 6명의 친구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를 한 명만 골라 돌아가면서 발표하도록 하였다. 제주도 한라산 등산을 다녀온 친구, 부모님과 스키장에 다녀온 친구, 친척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친구 등 겨울이라는 계절을 잘 활용하여 체험을 하고 온 친구들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허락지 않아 여행이나 체험보다 평소처럼 학원위주의 생활을 하고 온 아이들도 상당수 있는 것 같았다.

방학 동안에는 아이들이 심심하기도 하고 지루한 느낌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무엇인가 멋진 계획을 짜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보람 있는 방학생활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학기 중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한 학생들이 방에서 뒹굴뒹굴하기도 하고, 심심해서 빨리 개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도록 지루한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계속해서 평가로, 학업으로, 경쟁으로 바쁘게 시간을 채우는 것에만 너무 몰두해 있는 것 같다. 싸늘한 아침 공기에 이불을 끌어당기며 더 깊숙이 이불 속으로 침잠하면서 여유 있는 아침을 보내본 것이 몇 번이나 될까? 겨울 방학이야말로 일상으로부터 자신을 비우는 시간을 실천하는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다. 게임도 TV도 더 이상 재미가 없어서 오래 전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든 적이 있는가? 겨울 방학만이라도 이러한 한가로움과 심심함으로 일상을 돌아보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필자가 어렸을 때 배를 방바닥에 깔고 아랫목에서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독서의 재미를 알고 또 다른 책에 대한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듯이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할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겨울방학을 주었으면 한다. 계획에 의해 주어진 체험보다 스스로 찾은 사소한 일이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으리라는, 그러한 경험이 많을수록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차마 버릴 수 없다. 얘들아, 방학만이라도 현실을 비우고 여유로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정란 삼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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