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시행

▲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모습.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지난 4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에서 연명의료에 관한 행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는 지난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의사는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보호자의 의견에 따라 의료행위를 중단했기 때문에 살인방조죄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환자가 회생 가능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벌어졌으며, 이후 의사들은 인공호흡기를 한 번 적용하면 중단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 관련제도 시행으로 의료진과 환자 및 보호자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되는 가운데 김신재(심장내과 교수) 울산대학교병원 연명의료윤리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들어본다.

‘회복 가능성 無’ 의학적 판단 전제
생명 유지만을 위한 의료행위 중단

직접 작성해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담당의사가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
연명치료 시행 여부 판단 주요자료
반드시 지정된 기관에서 작성해야
작성내용 언제든 철회나 변경 가능

사전의향서 등록기관 턱없이 적어
울산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곳
보건소 등 공공기관으로 확대 필요

◇환자의 자기 결정권 존중하는 제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석달 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시행되고 있다.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또는 말기 환자(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간경화 등)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인공호흡기 착용의 의학적 시술로써,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끝내는 ‘안락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의학적인 판단 아래 생명 유지만을 위한 의료 행위를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절차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연명의료의 시행여부를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결정을 법적으로 보호한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최근 언론 등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을 ‘웰다잉법’ ‘존엄사법’이라고도 표현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의미가 다르다.

김신재 위원장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안략사’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생을 미리 마감하는 것을 말하며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며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다루는 것은 회생이 불가능하고 점차 증상이 악화돼 수개월 이내에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대상으로 의미없이 각종 연명장치를 이용하여 생을 연장시키는 것을 중단하는 것으로 ‘존엄사’와 혼용해서 쓰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연명의료결정법이 모든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한 것은 아니므로 ‘존엄사’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웰다잉은 안락사나 존엄사 등을 구분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고 안락한 죽음을 맞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김신재 울산대학교병원 연명의료윤리위원회 위원장이 환자에게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연명의료계획서로 본인 의사 남겨

연명의료결정법 상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에 관한 본인 의사를 남겨놓을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이면 건강한 사람도 작성해 둘 수 있으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찾아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해야만 법적으로 유효한 의향서가 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 의료기관에서 담당 의사 및 전문의 1인에 의해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진단 또는 판단을 받은 환자에 대해 담당 의사가 작성하는 서식이다.

작성된 자료는 연명의료정보포털(www.lst.go.kr)에서 조회가 가능하며, 이미 작성됐더라도 본인은 언제든 그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울산에서는 울산대학교병원이 연명의료기관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울주군 상북면 소재)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연명의료기관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해 위원장 1명을 포함해 5~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회 위원 중 의료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종교계, 법조계, 윤리학계, 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사람 2명 이상을 포함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우선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에 의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임종과정 환자라는 판단을 받아야 한다”며 “그 다음 환자가 스스로 서명한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환자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기를 원한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만약,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모두 없고 환자도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평소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의향을 환자가족 2인 이상이 동일하게 진술하고, 그 내용을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도 불가능하다면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해 환자를 위한 결정을 할 수 있고, 이를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확인해야 한다. 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친권자가 결정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 향후 보완돼야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지만 아직은 일반 시민들의 인식이 충분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역 의료계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마치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 환자의 생명이 단축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환자나 보호자들도 있다.

울산대학교병원에 따르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연명의료계힉서 작성 문의는 꾸준히 들어 오고 있는 상황이다.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기간이었던 지난해 10월16일부터 올해 1월15일까지 울산대학교병원에서 작성된 연명의료계획서는 총 21건으로, 신청자는 모두 말기암 환자였다. 성별은 남성이 8건, 여성이 13건을 신청했으며, 연령대는 50~60대가 13건으로 전체의 62%를 차지했다. 신청자 중 실제로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이 이행된 것은 모두 5건이었고, 신청자는 치료가 중단됨에 따라 기간 내 모두 사망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됨에 따라 각종 보완될 점도 지적되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광주와 세종은 연명의료중단 가능병원이 없고, 제주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기관이 지정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기관이 많지 않은 가운데 보건소와 같은 공공기관에서 작성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된다”며 “또한 해당 의료기관은 향후 연명의료결정법을 담당하는 전담인력과 공간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우사기자 woos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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