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5)

▲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 따만 미니(Taman mini)라고 하는 대공원 형식의 민속촌에는 26개의 대표적 주거유형이 실물크기로 재현돼 있다. 그 중 단연 눈길을 끄는 남부 슬라웨시의 토라자지역의 통코난(Tongkonan).

유인도만 6천여개 가진 인도네시아
26개 대표적 주거양식 복원해 전시
문화유산·관광자원으로 새롭게 주목
초가집 천시하며 없앤 한국과 대조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서기에 앞서
전통유산에 대한 가치 재발견 필요

해외관광이 마치 이웃동네 마실 다니듯 보편화된 오늘날 외국에 대한 이해는 자칫 오해와 편견을 만들기도 한다. 그 나라에서 유명하다는 관광지 몇 곳을 둘러보고 그 경험을 통해 그 나라를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여행객이 둘러보는 관광지는 대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나 건축물이며, 거대하고 화려한 사원과 궁전, 무덤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것들이 과연 그 나라에 대해 무엇을 알려 줄 수 있을까?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한 때 이집트 왕의 무덤이었을 뿐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거나 이집트 서민들의 생활양식을 반영하지도 않는다. 관광객들은 어마무시한 돌무덤의 크기에 경악하고 증명사진 몇 장 가지고 돌아와 이집트라는 나라에 대해 열변을 토하게 마련이다. 거기에 파라오의 절대 권력과 노예제 노동, 환생을 믿는 장례문화까지 파고들면 가히 전문가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를 대표한다는 타지마할도 실은 무굴제국 시대 왕비의 무덤에 불과하며, 그 앞에서 악다구니로 살아가는 인도인들과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마치 순례자들처럼 방문하는 유럽의 대성당이나 중동의 모스크들도 중세 도시적 맥락으로 이해하지 않는 한 그 사회의 독특한 환경이나 대중문화와 관련짓기 어렵다. 그 건축물 자체는 특정한 시대에 특수한 목적을 위해 특수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건축이기 때문이다.

그 사회의 맨얼굴과 마주하기에는 전통마을과 주거만한 것이 없다. 마을과 주택은 그들의 사회와 일상적 삶의 행태가 진솔하게 연출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세계관, 미학적, 공학적 가치와 방법이 반영되기도 한다. 한국인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보려주려면 경복궁이나 불국사보다 하회나 양동마을에 데려가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이에 오늘날 민속촌은 불가사의한 권위건축 못지않게 중요한 문화유산이며 관광자원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무려 1만8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해양제국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유인도만도 6000여개가 넘지만 우리 귀에 익숙한 것은 고작 자바 섬이나 수마트라, 칼리만탄, 슬라웨시 등 몇몇 큰 섬에 지나지 않는다. 섬마다 독특한 환경과 부족들이 살고 있어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이 300개나 넘는다고 한다. 종족과 언어가 다른 만큼 각기 독특한 생활양식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그 생활양식은 그들의 가옥에서 잘 나타나는데, 인도네시아만큼 독특하고 다양한 주거양식을 갖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수도 자카르타에는 이들의 다양한 전통가옥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민속촌이 만들어졌다. 따만 미니(Taman mini)라고 하는 대공원 형식의 민속촌은 몇 달이 걸려도 다 가보지 못할 여러 섬들의 주택들을 재현한 곳이다. 100㏊에 달하는 거대한 부지의 중앙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큰 호수를 만들고 그 안에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들을 모형으로 배치하여 지도처럼 보이게 했다. 그 주변에 26개의 대표적인 주거유형을 실물크기로 재현했다. 겉모습만 흉내 낸 허접스러운 모방품이 아니라 실물에 가깝도록 정교하게 복원된 사례들이다.

신기할 정도로 특이하고 경이로운 주택의 모습들이 밀림 속에 감추어진 보물선 처럼 나타난다. 하나의 가옥을 탐방할 때 마다 평생 만나보지 못했던 원주민들의 벌거벗은 모습과 조우한다. 사는 사람은 없지만 그들의 독특한 삶의 행태와 환경과 신앙 따위를 연상하기에 어렵지 않다. 우리네 한옥처럼 여러 채로 이루어진 중부 자바지방의 죠글로(Joglo), 여러 겹의 곡선지붕이 중첩되어 있는 서부 수마트라의 집, 많은 가족이 한 집에서 살아가는 칼리만탄의 장옥(long house)에 이르기까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독특한 주거형식이 발길을 유혹한다.

그중에서도 남부 슬라웨시의 토라자지역 주거는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다. 통코난(Tongkonan)이라고 부르는 이 가옥은 2층으로 구성된 고상건축인데, 양 끝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 말안장처럼 휘어진 지붕이 특색이다. 검은 색, 붉은 색 등으로 채색한 외벽문양의 아름다움, 대나무를 쪼개 정교하게 쌓아 하늘로 치솟게 만든 지붕구조의 디자인과 기술력 등은 열대우림의 미개종족이라는 편견과 오해를 준열하게 꾸짖는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한국인의 독특한 집은 무엇일까? 한옥이라 하면 흔히 기와집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서민대중들은 농민층이었고 그들의 집은 거의 초가집이었다. 그것도 지역마다 다른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과 소가 살림채 안에 같이 사는 함경도의 양통집으로부터, 두 채가 평행하게 마주보는 평안도의 쌍채집, 거센 바람에 대응하도록 만든 제주도의 돌담집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의 환경에 대응하는 초가집들이 즐비했었다. 그 많던 한국의 초가집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때 초가집은 가난과 저개발의 상징으로 천시 받았다. 살기 좋은 새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가집도 없애야’했다. 문화자산으로서 초가집의 가치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불과하다. 하지만 민속촌을 짓는다고 수많은 돈을 들이고도 형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무국적의 초가집을 짓는 예가 허다하다. 그 자화상 속에 조급증이 자리한다. 새로운 것을 찾기에 앞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안목과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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